요즘 사춘기 초입의 딸아이와 자꾸 부딪힌다. 부딪치는 것인지, 부딪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일매일 크고, 작게 말다툼이 있다. 사춘기 문을 열고 있는 아이를 대하는 게 처음인지라 이런 상황이 낯설고, 괴롭다. 나 스스로는 감정의 위기라고도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갱년기가 미리 앞서 온 느낌이 들 정도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한다.
초 5학년 딸아이. 멋에 관심도 있고, 친구들에게도 관심이 많고, 요즘 걸그룹에 대한 사랑은 크고, 학업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이다. 자기의 미래에 대해 고민도 조금씩 하고, 좋고 싫은 게 분명한 아이이다. 학업적으로 뛰어나게 똑똑한 아이는 아니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적절히 해내고 있으므로 크게 손이 가는 아이도 아니다. 날씬하고, 내가 보기에는 얼굴도 예쁘다. 특히 집게 핀으로 긴 머리를 올렸을 때에는 내가 낳은 딸이 맞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 눈에는 참 예쁜 아이이다.
말은 또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 친구들과 통화하는 것을 듣거나, 혹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면 살살 녹을 정도로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그것을 본 어떤 엄마들은 자신의 딸을 삼고 싶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선생님께도 칭찬을 많이 받는 아이이다.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해야 하나....
딱 거기까지이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뭔가 다른 아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눈을 흘기고, 단답형의 딱딱한 말투가 더 많고, 한숨이 많아진다. 발을 내딛는 소리가 거칠어진다. 동생에게 놀리는 말투는 가히 변호사와 같은 사무적인 말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책상에서 먹은 간식의 쓰레기는 수북하고, 학원 가방을 포함한 여러 가방은 소파 위에서 나뒹굴고 있다. 입었던 카디건, 점퍼는 소파 위 가방 근처에 널려있고, 신었던 양말은 돌돌 말려 책상 구석 어딘가에 켜켜이 쌓여있다.
40이 넘은 나는, 내 아이의 대부분의 모습을 집에서 바라본다. 짧아진 말투와 도도한듯한 얼굴 각도, 그리고 투정들. 자신의 의견을 따박따박 말하는 야무짐. 그런데 어째 나는 이런 것들이 거슬린다. 나는 내 딸아이가 여전히 초등 저학년 때처럼 내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고, 먹은 건 바로바로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 벗은 양말과 옷은 빨래통으로 직행시켜주기를 바란다. 말은 친절하고 예쁘게 했으면 좋겠고, 동생에게는 상냥한 누나였으면 좋겠다. 책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고, 글도 잘 썼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공부도 최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잘했으면 좋겠다.
첫째라서 혜택도 많이 받고 관심도 많이 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대도 많다. 솔직히 내 마음을 들어내 보자면, 남들이 말하는 '엄친딸'이 내 아이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사교육 없이 혼공으로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 한다. 참 욕심이 많은 엄마이다. 욕심이 지나치게 많은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큰 아이를 볼 때면 그 아이의 타고난 역량과는 상관없이 나는 드라마 속의 '엄친딸'의 환상을 갖게 꿈을 꾸게 된다. 참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 이제 나의 바람과 사춘기 초입의 딸의 모습을 보니 그려지는 뻔한 풍경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부딪히기도 부딪치기도 한다. 조용히 지나가는 날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편안하게 잠자리에 든다. 그렇지 않은 날은 나의 잔소리 폭탄에 내가 질식해 쓰러질 정도이다. 나의 잔소리가 시작이 되면 아이는 점점 내게 등을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 모습에 상처를 받고, 딸아이를 야단치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3번 이상의 집안 풍경이다. 행복하려고 결혼했고, 더 행복하려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는데, 내 육아가 편하지 못하고 심지어 불행하게 느껴졌다. 분명 내 육아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육아는 카오스 그 자체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눈을 감았다. 그리고 12년 전으로 돌아가 보았다.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고, 아이를 갖었을 때의 기분... 떠올려 보았다. 설레었다.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건 굉장한 모험이면서도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사랑으로 잘 키울 자신...
입덧으로 잘 못 먹는 내게 같은 간호사 선생님 중 한 분이
"왜 견과류 안 챙겨 먹어? 챙겨 먹어."
"아~ 견과류요? 호두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 말씀하시는 거예요? 쓰던데..."
"똑똑한 애 포기한 거야? 벌써? 기왕이면 똑똑한 애 낳아야지."
"에이~ 그냥 건강하기만 하면 전 좋을 것 같은데요."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선배 선생님의 얼굴은 '애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네.'라는 표정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이에게 기대하는 게 없었다. 똑똑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 예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건강하게만 태어나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내가 많이 사랑해 줄테니까. 사랑으로 다 채워줄 테니까!
그리고 딸이란 걸 안 순간에는 더더욱 감사했다. 아기자기하게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게 키우리라 결심했다. 아니,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됐다. 나처럼 부족한 부모한테 왔는데 이 세상 사는 동안 사랑을 맘껏 받아보며 살아야지 않을까, 라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그냥 그 자체가 예쁘고 사랑스럽고, 그 존재 자체가 너무 좋았다. 마치 첫사랑처럼 설레고 봐도 봐도 또 좋았다.
그런데 그럼 나는 언제부터 이 아이와 이렇게 비틀어져가는 관계가 된 것일까? 정확히 아이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치기 시작한 건 초등 1학년 때부터였다. 당시 대형 영어 학원을 다녔는데 아이가 숙제를 매우 느리게 했다. 다른 친구들은 30분 만에 끝낸다는데 내 아이는 2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아이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내 아이가 침착하고, 꽤 꼼꼼한 성향의 아이란 걸 말이다. 또한 아이가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못했는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단지 평균에만 집착하였던 것이다. 평균 시간에 미치지 못하는 내 아이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비교의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코로나 시국으로 진입한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엄마표로 수학책을 사서 내 아이를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알 것이다. 얼마나 많이 책을 던지고, 얼마나 자주 책을 찢게 되는지...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아이를 다른 집 아이와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평균이 궁금한 나는 자꾸 다른 집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게 평균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는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도 없다. 딱 내가 그랬다. 어리석지만 그것을 모른 채 의욕만 넘치는 엄마였다. 내 아이에게 비교를 기본 바탕으로 한 훈계와 야단, 그리고 잔소리들... 내가 말하면서도 듣기 싫은 말들... 내가 질리도록 싫었다. 내 딸아이는 오죽했을까? 눈물을 흘리며 내 앞에 앉아 그 칼과도 같은 말들로 가슴을 후려침 당한 그 아이는 오죽했을까?
하지만 그걸 아는가? 머리로는 '이제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내 입이 먼저 움직이고, 내 마음의 욕망이 앞서 가고 있는걸 말이다. 그러면서 아이의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게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집에서는 딱딱하게 굳어 가는 아이가 되었던 것 같다. 마음을 진심으로 다 이해받고 싶은데, 말의 끄트머리에는 늘 공부, 숙제, 평균이 있으니 아마도 아이도 한숨을 삼키며, 그 작은 마음 안에 돌멩이들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든 던져버릴 돌멩이들을 말이다.
그 첫 번째 타깃이 아마도 동생이었을 것이다. 만만해 보이니까. 그리고 자신보다 더 야단을 덜 맞는 것이 얄미우니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는 속담처럼 그 분풀이 대상이 되는 한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엄마인 나였다. 이건 꽤 직접적이고 도전적인 대상이다. 큰아이 입장에서는 가슴 떨리도록 큰 반항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엄마인 나는 그 태도조차도 눈엣 가시 같았다. 정중하지 못하는 태도, 예의 바르지 못한 태도, 무시하는듯한 태도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또 잔소리와 동시에 야단을 치게 되었다. 심지어 질책까지! '너는 잘못된 애야'라는 낙인까지!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 나는 '쟤가 잘못하니 내가 이러는 거야. 아~ 속상해 미치겠어.'라며 속앓이를 해야 했다. 밉기도 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죽도록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늘 서로의 존재에 감사했던 우리인데... 내가 문제일까? 딸아이가 문제일까? 해답을 찾고 싶었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당장은 내가 너무 괴롭고, 이대로는 딸아이와 나의 관계가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대부분 평화스러웠지만 그건 일부러 드러내고 싶지 않아 수면 아래로 끌어내려 잠시 누르고 있는 상태란 걸, 나도 딸아이도 무언이지만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나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본질 육아!
뭘 잘해야 사랑하는 조건을 건 사랑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 그 말이면 나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어디 맘처럼 되냐 말이다, 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내게 지나영 교수가 단독적으로 묻는 것 같았다.
"아이를 왜 낳으신 겁니까?"
"............"
"아이를 왜 낳으신 겁니까? 아이가 원했습니까?"
"아니죠. 나와 내 남편의 선택으로 낳은 것이죠."
"아이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냥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의미는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사랑을 충분히 받고, 충분히 주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낳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아~ 본질... 그래, 맞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서 낳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내 아이에게 조건을 건 사랑, 사랑이라는 달콤함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게임을 내 걸고 있었던 것이었다. 난 20대 때 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찾아서 내 내적 에너지를 쓰면서 동시에 몹시 외로워했었다. 그러면서 난 부모가 되었을 때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세상에서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최초의 1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문득 그 순간이 떠올랐다. 무조건적 사랑을 받으면, 나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랑을 받으면 그 마음이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내 역량을 다 뿜어내며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부러워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20대의 아직 부모가 되지 않았던 나는 본질 육아,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깨우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 40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다행이다. 사춘기 초입의 아이를 다시 본질적으로 사랑할 마음을 갖게 된 것이 말이다. 느리면 느린 대로, 수학을 못하면 못하는 대로, 배움이 느리면 느린 대로, 정리를 못하면 정리를 못한 대로 받아들이며 깊이 사랑하는 그 마음을 갖도록 나를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