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경제적으로는 '백수'였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수는 아니었다. 전업 주부라는 사전에도 정의되어 있고, 직업란에 적을 수 있는 직업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일푼 직업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학습과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었다. 게으른 전업 주부가 아닌 굉장히 부지런한 전업주부였다. 낮잠을 자본 일이 손에 꼽았으며 집안은 늘 반짝거렸다. 결벽증까지는 아니지만 전업주부이니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결벽증 가까운 상태를 흉내 내며 살아왔다. 게다가 아이들의 학습을 엄마표로 해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직접 배우고, 익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자기 계발로 이어졌다. 유명 어느 인플루언서처럼 나도 육아 전문가가 되고 싶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 노력에 대한 수입은 "0"이었다.
통장에 찍힌 수치적인 수입이 "0"였지, 실질적으로 따지자면 아이들의 학원비를 꽤 아꼈으니 실제적으로는 돈을 벌고 있는 셈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 남편은 늘 내게 "자기는 이미 돈을 벌고 있는 거야."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 말이 따뜻한 남편들이 건네는 '위로의 말'임을 우리는 안다. '돈을 벌고 있는 셈이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가화만사성'을 좋아하고, 현모양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내조가 남편이 더욱 일에 집중하게 하고 돈을 더 벌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이들 또한 마음이 안정되어 학업에 더욱 열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사실 그게 정석이다. 가정에서 마음이 불편하면 회사 일이 되었던, 학업이 되었던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말이다. 나는 이 이치를 알았기에 전업주부를 지속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키우는 것에 재미를 붙여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늘 생각대로만 흘러주면 감사하겠는데, 내 마음도 환경도 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이 성장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게 아니다. 내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고, 남편 역시 자신의 능력을 키워가며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생각과 마음이었다.
아이들과 내 남편의 눈에 띄는 정도의 성장을 기대했으나 더디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이 느끼기에는 많이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옆에서 아웃풋을 보고 성장의 정도를 가늠하는 내가 보기에는 왜 이렇게 더디게 성장을 하는지... 점점 지쳐오기 시작했다. 정성 100% 이지만 무일푼인 일을 하면서 자신감마저 떨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성장을 꿈꾸기 시작했다.
'나를 키워보면 어떨까....'
나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 당시 내 마음은 마치 한낮의 땡볕 속에서 사막을 걷는 여행자 같았다.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모래뿐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마음마저 깊은 갈증으로 타들어가는 상태였다. 간혹 책이나 강의를 통해 작은 오아시스를 만나기는 했으나 나의 갈증과 나의 피곤함을 충분히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뭐가 문제일까? 육아 정보가 부족해서인가? 나의 생리적 증후군이 문제인가? 인내심이 부족해서인가?....
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해보았다. 그러면서 솔직한 나와 대면하게 되었다.
나는 현재는 무일푼 육아와 무일푼 집안일을 하지만 조만간 이것이 아이들의 바른 인성 및 훌륭한 학교 점수, 그리고 선생님들의 좋은 평가로 돌아올 것을 기대했었다. 또한 남편도 점점 사업이 확장되고, 자신의 분야에서 한 이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종국에는 내 40~50대가 경제적으로나 육아적으로나 다 안정되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기를 바랐다. 나의 내면에서는 이런 솔직하지만 극히 계산적인 것들이 있었다. 내 시간과 노력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 내 아이들과 내 남편에게 어음을 발행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한 나와 대면하고 나서 보니, 이건 이뤄지면 감사하지만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무일푼 노동력을 다른 곳에 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키워서 나를 써보는 연습을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나는 꽤 경제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돈을 좋아한다. 속물은 아니지만 돈이 있으면 편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디에 돈을 써야 좋은 지도 적당히 아는 사람이다. 사치스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린고비도 아닌 사람이다. 내 돈을 필요에 따라 적당히 써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겐 돈이 없다.
돈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그동안 무일푼 가사 외에는 돈을 위한 일을 한 적이 없으니 내게 돈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럼 이제는 돈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워킹맘이 되었다. 내 아이들의 자립이 걱정이 되었지만 그들이 크게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나 역시 경제적 노동다운 노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곧 두 번째의 월급이 나온다. 한 달이 가는 속도는 참으로 이상하다. 어느 주는 참 빨리 가는 것 같으나, 이번 주처럼 곧 월급을 앞두는 주는 참으로 느리게 가는 것 같다. 시간의 속도가 들쑥날쑥 이기는 하지만 난 두 번째 월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간혹 발생한다. 일이 하기가 싫다.
정확히 말해서 일을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 딱 그런 날이다. 월요일의 의욕 떨어지는 날. 그런데 어쩌면 전업주부의 관성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일푼 노동이 싫었지만, 극혐으로 싫어하지 않았고, 그 생활이 불편하지 않았기에 자꾸 그 힘으로 들어가려는 관성 말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나는 몸을 뒤로 한번 젖히기는 하지만 앞으로 나가려고 애를 쓴다. 달리는 차의 속도에 이제는 익숙해져야 하니 말이다. 속도를 늦췄다, 빠르게 하며 속도를 조절하기는 해야 하지만 결국에는 달리는 차에 타고 있어야 하는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러고 싶다. 달리는 차에서 다시 내리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