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쓰는 목적, 글쓰기의 즐거움에 대해.
아이들을 재웠다. 그리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이상하게 미친 듯이 글을 쓰고 싶은 날이다. 가끔이지만 이런 날이 있다. 하루가 굉장히 지친 날, 혹은 너무도 기뻐 그냥은 잠이 들 수 없는 날은 미친 듯이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오늘 나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상태이다. 이상하다. 그냥 글이 미친 듯 쓰고 싶다. 누가 읽으면 뭐... 조앤 롤링이나 노희경 작가, 혹은 김은희 작가쯤 되나, 오해할까 싶지만 나는 아주 아주 보통의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한 국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글이 주저리주저리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한동안 놓았던 글을 쓰기 시작한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때는 책을 많이 읽고, 터져 나오는 나의 생각들을 도저히 정리할 수가 없어서 글을 조금씩 일기처럼 긁적였던 것 같다. 손글씨로 아이들이 안 쓰는 무지 노트에 2~3장이 넘게 쓰고도 부족하기도 했다. 창작이었으면 더없이 즐거웠으련만 대부분은 그동안 내 삶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 등이었다.
결국 되돌아보며 생각해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에는 글이 쓰고 싶어 졌던 것 같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이 깊은 부분까지 이야기할 수 없을 때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면 무당이 방울채를 잡듯 나는 연필을 잡았다. 삶은 단순해지지만 생각은 복잡해질 때 말이다. 그게 어디 나뿐이랴! 대부분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예전에는 작가, 글을 쓰는 사람들은 책을 쌓아놓고서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읽는 사람들, 혹은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만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도 글을 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배움이 길지 않고,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대단한 문필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엄청난 다독가도 아니지만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아니, 글이 쓰고 싶다. 기자 출신이 아니라서 글의 어휘력이나 문장의 구성, 문단의 구성이 엉성할지는 모르겠다. 시인이 아니어서 글의 꾸밈이 아이 수준인지도 모르겠다. 카피 라이터가 아니라서 이야기의 재치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싶은 마음만큼은 여느 작가 못지않을 듯하다.
왜 글이 미친 듯이 쓰고 싶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첫 번째는 그냥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듣는 사람이 혹시 지루해하지는 않을지, 혹은 내 이야기만 너무 해서 상대방은 힘들지 않았을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오히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할 정도의 시원함은 아니겠지만 나름 명쾌해지는 기분도 든다. 묘한 카타르시스 같은 느낌도 받는다. 마치 울고 싶을 때, 일부러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내 의지를 한 번 더 태우고 싶어서이다. 나는 머리가 좋지 않은가 보다. 미련하기도 하다. 내가 한 번 가진 의지가 자꾸 약해질 때가 많으니 말이다. 자꾸자꾸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글을 쓰며 내 힘을 잃어가는 의지에 심지를 태운다. 불이 더 활활 붙어오를 수 있도록 말이다. 남들이 내게 해주는 "파이팅"이란 말보다 내가 내게 쓰는 글이 오히려 나를 달려가도록 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난 사립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자율학습까지 끝내고 나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강제적으로 기숙사 도서관으로 바로 이동을 했어야 했다. 10시가 되는 시간인데 피곤했다. 유난히 체력이 약했던 나는 도서관이 곧 숙면실이 되기도 했다. 꾸벅꾸벅 졸다가 사감 선생님의 감시의 몽둥이인지, 사랑의 몽둥이에 어깨를 툭 맞을 때면 나는 포스트잇에 글을 썼다. "이렇게 졸다가 거짓 꼴 못 면한다", "잠은 죽어서 자면 된다.", "이렇게 자다가 너 어쩔래?" 등등의 글을 써놓고 의지를 태우고, 졸음을 조금씩 이겨내기로 했다.
글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채찍질할 목적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힘이 없는 날은 더더욱 글을 쓴다. 달리라고, 공부하라고, 멈추지 말라고,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세 번째의 이유는 나를 포함해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을 때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슬픈 존재들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팍팍하다. 위로가 필요하다. 나 역시 전업주부의 삶을 살 때도 그랬고, 내 아이를 잘 키워보고자 애를 썼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그랬고, 남편이랑 심하게 다퉜을 때도 그랬고, 일을 시작하면서도 그랬다. 늘 위로가 필요했다. 누군가의 말이 힘이 된다. 무심코 던진 남편의 "아~ 짜증 나겠다."라는 말 한마디에도 울컥할 때가 있다. 때로는 "애썼다."라는 그 세 글자에 눈물이 흐를 때도 있었다.
그런데 글은 나 스스로를 내가 위로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가장 잘 알고, 내 상황을 가장 잘 알고,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내가 나를 위로하면 눈물이 나기도 하면서도 '그래, 나 그래도 잘 살고 있네. 오늘 하루 잘 이겨낸 거야.' 혹은 '내 아이들 잘 크고 있고, 이만하면 나 좋은 엄마이지 뭐. 화내지 않고 참기를 잘했어. 근데 힘들었겠다.' 혹은 '정말 화가 났을 것 같은데? 그 상황에서 화를 안 내고 버틸 사람이 어딨어?' 라며 내 안의 내가 나를 위로했다. 달콤하면서도 속이 시원해지는 위로이다. 내 치부까지도 다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나인데, 그런 내게 내가 말하고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글이 미친 듯이 쓰고 싶은 날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의 상황이 있고, 이유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는 중에 가장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내 아이들에게 지금의 내 생각을 내가 죽고서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아이들에게 홀로 잠들라고 부탁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글 쓰는 엄마이기에, 모두가 잠든 이 시간을 뺏길 수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미친 듯이 쓰고 싶은 이 마음을 억누를 자격이 너희들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려줄 이유가 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고, 출간 작가가 아니면 어떠한가. 글 쓰고 싶은 욕구는 같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