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랑으로 감염되다

by 골드가든

열이 38~39도를 오르락내리락한다. 뼈 마디마디가 쑤셔오며, 나른해지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온몸의 힘이 빠진다. 해열제 1알을 먹고 일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쉬고 싶지만 시간 약속이 정해진 일이기에 아픈 것을 티를 내면 안 된다. 일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이구나! 일하지 않은 전업 주부였을 때에도 아파도 움직여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은 아파도 무조건이다.


새벽부터 열이 났나 보다. 자다가 내 몸의 이상한 느낌에 뒤척거리다 깼으니 말이다. 그렇게 새벽 5시 기상을 하고, 강의를 들은 후 앉아있는 것 자체의 힘듦을 이길 수 없어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내 몸 일으키기 힘들어 그냥 이대로 푹 자고 싶다, 라는 욕망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주부이지 않은가. 아파도 아이들 아침을 준비해줘야 하고, 남편 도시락을 준비해주고, 아이들 학교 갈 준비를 마친 뒤 학교를 보내야 했다. 설거지와 식탁 정리는 뒤로 하고 드디어 침대에 누웠다. 38.8도. 몸이 더 쑤셔온다. 관절 관절마다 통증이 있어, 통증 있는 곳만 가볍게 때리다 보면 '이곳이 관절이구나.' 알 정도였다.

코로나가 대유행일 때에도 코로나에 걸려본 적이 없는 나는 '이게 코로나 걸린 증상인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일은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되었다. 누가 대체해 줄 수 없는 직업이기에 아파도, 어지러워도 해야 한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리를 팍팍 두드려 더 아프게 만들고 싶은 통증이 몰려왔다. 그래도 웃어야 했고, 진상 고객을 대해야 했다. 정신이 몸을 이기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나니 통증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열이 오르니 입맛도 없고, 반나절 계속 얘기했더니 더 말할 기운도 없었다. 내 아이들을 돌볼 힘조차 없었다. 그래도 나 혼자의 몸만 챙길 수 없어서 마스크를 쓰고 거실로 나왔다.

내가 내 작업 공간에 있는 동안 방문 밑으로 편지를 보내준 딸과 행여나 더 아플까, 자꾸 물어봐주는 아들에게 뭐라도 챙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실로 놀랍다. 아픈 엄마를 생각하며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일을 챙기고 있었으며, 아이 같지 않은 의젓함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부쩍 자랐다,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아이들의 나이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5살이어도 8살이어도 16살이어도, 어느 나이 든 상관이 없다. 5살 아이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받을 때도 있지 않은가!

사람은 아플 때의 작은 손길에 감동을 받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그렇다. 아플 때면 어른도 아이가 된다. 아픔 앞에서 나약해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으려나? 39도가 넘는 열이 주는 무기력함과 두통, 그리고 내 몸이 내 맘대로 일으켜지지 않는 그 불쾌함을 이길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마음까지 외로워지고, 쓸쓸해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아픔, 그 자체이다. 작은 감기 바이러스에도 그렇다. 갑자기 서러워지는 기분까지 들 때도 있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나 한 몸 챙기는 것도 힘들어지는 순간, 8살짜리 아이가 내게 전해주는 친절이 있었다. 뜨거운 물을 떠다가 내가 누워있는 방에 놓고 가고, 행여 자는데 무서울까 봐 자신이 아끼는 작은 수면등을 켜놓고 갔다. 그러더니 아직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물수건을 가지고 와서 내 이마 위에 얹어주고 간다. 그리고는 이내 또 들어와서는 과일볼에 차가운 물을 가득 담아왔다.

"엄마, 이 물수건 뜨거워지면 엄마가 다시 차갑게 해서 이마에 올려. 내가 자니까 나는 그것까지는 못할 것 같아."

아이의 따뜻한 이 친절에 39도 넘는 나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함께 늙어가는 40이 넘은 남편도 내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난 그가 아플 때 그의 이마를 차가운 내 손으로 짚어보고, 체온계로 체온을 재며, 약을 챙겨주기는 했지만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달랐다. 신생아를 넘어서 열이 나는 시기가 되면서부터는 무조건 열이 나는 아이들 옆에서 밤새 물수건을 갈아주었다.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잘 떨어지지 않는 열감기일 때는 밤샘 간호를 하기도 했다. 중간중간 체온을 측정하고, 시간에 맞춰 해열제를 먹이고, 탈수 올까 염려되어 물을 수시로 먹였다. 침대 옆에 항상 물을 가득 채운 볼을 둔 채 물수건을 적셔 짜고 아이의 몸을 닦고, 이마에 올려주고 했다.

나의 사랑의 온도가 그들의 아픈 체온을 넘어섰기에 가능했다. 해열제가 식힐 수 없는 열을 나의 잠을 이겨낸 물수건이 이겨냈다. 그것을 경험한 아이는 아픈 중에도 그 사랑의 온도를 느꼈고, 그것을 기억했으며, 내가 아픈 시점에 그것을 표현한 것이다. 사랑이 사랑으로 감염이 되었고, 기억이 되었고, 행동하게 했다.


그 사랑을 받은 나는 또 자식의 사랑에 감염되고, 감동받고, 기억한다.

사랑 바이러스가 돌고 돌고 돌아 움직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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