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어른다운 엄마

by 골드가든

가을 햇살이 눈이 부시는 어느 날 산책을 하다 문득 '나는 어른다운 엄마인가?'라는 질문을 내 내면에 던져보았다. '어른다운 엄마'라니? 어른이니 엄마가 되었고, 그러니 나보다 더 약한 아이들을 키우고,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참 쓸데없는 질문이다, 싶어 스스로 바람기 빠진 웃음을 피식하고 내뱉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인 나에게는 전문성이 없다. 그래도 부지런하기도 하고, 배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아서 육아를 책으로 배웠다. 자녀 교육서와 육아서는 지금도 늘 책장에 두고 읽는 편이다. 현실의 육아는 물론 책 속의 가르침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책마저 없다면 나의 육아는 참 불쌍해질 듯하여 책을 곁에 둔다. 그리고 사색한다.



집 근처에 있는 호수 공원에는 제법 가을이 익었다. 단풍나무는 빨갛게 물이 들어 눈이 부시고, 떡갈나무는 밝은 갈색과 노란색으로 물을 들여가고 있었다. 갈대들은 갈색으로 수수한 빛을 내뿜는 것이 화려함과 수수함이 공존하는 가을이다. 평범한 시멘트길도 빨갛고, 노랗고, 푸르스름하고, 갈색의 나뭇잎들이 떨어져 마치 카펫을 깔아놓은 듯 아름답기 짝이 없다. 이 길을 조용히 혼자서 걷고 있는데, 내 앞으로 70대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느릿 걸음을 걷고, 그 발걸음에 맞춰 할아버지 역시 일부러 늦춘 걸음을 걷고 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느리게 걷는 할아버지는 주변을 둘러본다. 하지만 할머니는 오직 지팡이와 자신의 발의 움직임에만 집중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행여 넘어질까, 부축하면서도 할머니가 살피지 못하는 가을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여보, 저 나뭇잎 색이 작년에도 저렇게 고왔나? 어째 해가 갈수록 색이 더 고와지는 것 같지? 빨간색이 애기 색 같아."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제야 단풍이 든 나무를 쳐다보았다.

"진짜 예쁘네요. 땅만 보고 걸으니 몰랐네요. 참 곱네요. 근데 땅에 떨어진 나뭇잎이랑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있는 나뭇잎은 색이 다르네요."

두 분의 걸음 속도가 느렸으나 그들을 앞서 걷고 싶지는 않았다. 작게 들리는 그들의 대화 내용이 잔잔하게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할아버지께 의지해 걷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미 늙어버린 몸을 이끌고 산책을 하는 어르신들 옆으로 한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산책 나온 4~5살 꼬마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뛰려는 아이는 제지하고, 느리게 걸어오는 아이는 재촉해서 서로의 걸음을 맞췄다. 4~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걸음이 어르신들과 나의 걸음에 비해서는 빨랐다. 아이들은 나뭇잎을 보지 않았다. 가끔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에 다 같이 "와~"하고 함성을 지를 뿐이었다.

70대와 40대와 10대도 되지 않은 꼬꼬마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70대의 노부부는 그들이 귀엽고 부러운냥 쳐다보고 있고, 40대인 나 또한 그들의 재잘거림이 상큼하여 미소 짓고는 다시 나의 산책길을 걸어갔다. 그 꼬꼬마 아이들을 보고 70대 노부부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들의 시끄러운 재잘거림과 부산스럽고 산만함도 그들을 포용하는 눈치였다. 어른의 여유로움이다.



때때로 아이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고, 심지어 미울 때가 있다. 왜 쓰레기는 바로바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는 것이며, 왜 항상 책상은 지저분한 것이며, 지우개 가루는 왜 늘 책상 위에 수북한지, 그리고 방마다 불은 왜 켜고 다니는 것이며, 색종이를 가지고 놀고는 왜 그대로 펼쳐두는지, 화장실의 비데 티슈며 물티슈의 케이스 뚜껑은 왜 늘 항상 열어두는지, 숙제는 왜 바로바로 하지 않는지... 늘 의문 가득하다. 잔소리를 들은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도 변화되는 것은 없다. 집안의 사소한 일부터 모든 것은 엄마의 내 몫이 되어버린 것 같다. 집안일에 참여시키려고 해 보지만 빠릿빠릿하게 행동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결국 화가 나버린다.

그리고는 야단을 친다.

"누군 머슴이야? 나도 어지를 수 있어. 뭐 나는 쓰레기 그때그때 버리고 싶고, 그때그때 치우고 싶어서 치우니? 누군 화장실 더럽게 쓰고 싶지 않은 줄 알아? 나도 샤워하고 머리카락 내버려 둔 채 그냥 나오고 싶을 때 많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말들은 과히 가관이다. 조금 더 큰 아이가 조금 덜 자란 아이에게 쏟아붓는 하소연 같다. 야단을 치면 내 말을 들을 것 같은 발악 같은 내 말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음이 부끄럽다.

아침에 산책길에서 보았던 그 노부부는 이런 상황에 어찌하였을까? 나는, 지금 나와 내 아이를 동등한 위치에서 보며 억울해하고 있다. 그들을 어른인 내가 품지 못하고 하소연을 하였다는 것은 어른인 내 그릇의 크기가 딱 어린이보다 약간 더 큰, 품을 수는 없고 겹치면 '달그닥 딱딱' 소리가 날- 그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엄마인 날 이해할까? '아~ 우리 엄마가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얘기할까?'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내 아이들 역시 야단치는 나를 피해 구석으로 숨어 들어갈 뿐 나를 이해하거나, 혹은 행동을 바꿔야겠구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의 변화는 그렇게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흔히들 갑자기 행동의 변화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우스개 소리로 '죽을 때가 되었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안 하던 행동을 해요?'라고 한다. 그만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한번 길들여진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의식보다 더 바뀌기가 힘든 것이 행동인 것 같다. 그럼 언제 행동이 바뀔까?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감동을 받을 때 내 행동이 바뀌었다. 나에게 스스로 감동을 받았던지, 혹은 강연을 듣고 감동을 받았던지,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에 감동을 받아서 그 여파로 내 행동이 변화된 경험들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남편의 작은 친절한 행동- 안 하던 설거지를 해준다던지, 출근길에 쓰레기를 버려준다던지와 같은 행동-들을 보고는 나를 위한 그의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나 역시 그에게 더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칭찬의 메시지를 보내려고 애쓰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아이들 앞에서의 내 행동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은 내가 그들을 감동시키지 못했다는 뜻이다. 특히 엄마의 삶 속의 행동에서 말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 노릇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잔소리를 해댔다. 주변을 깨끗이 해야 하는 것, 동생을 놀리지 말아야 하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제때 성실히 끝내야 하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 어른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것... 등등등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더 나은 멋진 사람이 되어가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기대했었다. 즉, 좋은 사람의 모습, 좋은 어른의 모습으로 자라가 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좋은 행동들을 내 것으로 체득하는 것이 어디 한 번에 이뤄지던가! 내 의식을 몇 백번 돌려놔야 좋은 행동들이 내 것이 된다. 내 의식을 세팅한다는 것,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일단 내 행동에 문제점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지만 이것 역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좋은 어른들의 행동을 보게 되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부지런한 어른이기는 했지만, 좋은 어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크게 잔소리하지 않아도 포용하듯 하지만 단오한,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내면의 무릎이 구부러지며 승복하는 그 지점이 있을 터인데, 아직은 작은 어른이라 잔소리가 앞서니 아이들의 행동이 그대로임을 누굴 탓할까!

진짜 어른이라면, 멀리까지 볼 수 있는 원시적 시안을 가졌기에 조급할 필요가 없고, 그러니 서두를 필요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의 문제점이라 인식되는 것에 연연하지 않을 용기가 있으니 잔소리할 필요 없이 아이들 마음을 읽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따뜻함을 느끼고 자란 아이들이 어긋나거나, 행동이 반듯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어른, 제법 어른다운 엄마가 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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