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인데도 날이 참 따뜻했다. 주말인 데다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집 근처에 있는 호수 공원으로 향했다. 햇살을 등지고 있으니 따뜻한 찜질을 하는 것처럼 마냥 좋았다. 앞에 지인이 없었다면 아마 잠깐의 꿈놀이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태양을 마주 대하고 있으면 눈이 부셔서 불편하지만, 태양과 같은 방향으로 앉아 있으니 눈 부심은커녕 온몸을 따스하게 해주는 호사를 누리니 좋다.
아들 녀석과 딸아이는 간단히 준비한 점심을 먹을 겨를도 없이 놀이터로 향했다. '해님과 바람'의 동화처럼 따뜻한 해님 덕분에 아이들은 외투를 벗고는 신나게 모래 놀이를 하고, 잡기 놀이를 한다. 씽씽이를 타며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니 여유로운 주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육아도 이처럼 여유로울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육아는 여유롭다고 생각되는 그런 콘텐츠는 아니다.
그럼 육아가 힘들기만 한가요?라는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대답은 당연히 "아니요."이다. 내 육아는 내 삶의 여정 중 한 부분이자, 중요한 과정이라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기에 휴가처럼 여유롭게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하나보다 둘이 좋아서 가정을 이루웠고, 둘보다 셋이 더 행복할 듯하여 아이를 낳았고, 셋보다는 넷이 더 행복할 듯하여 아이 둘을 낳았으니 행복의 크기는 분명 더 커졌을 것이다. 행복의 부피는 늘어난 것이 분명한데, 그만큼 나의 책임감 또한 늘어났으며, 나의 도전의 횟수도 숱하게 늘어났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내 육아를 성실히 해내기 위해 많은 고민들과 많은 기획들을 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고민들과 기획은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 육아의 콘셉트를 깨닫게 되었다. 내 육아는 "엉망진창, 뒤죽박죽 육아"이다. 어쩌면 내가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육아에도 스며들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완벽한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기도 하다. 몰두, 끈기가 부족한 나의 성격이, 나를 완벽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몰고 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면 모든 게 대충이냐? 그건 아니다. 난 매번 내가 맡은 일에서는 내 능력치 안에서의 최선을 다한다. 다만 그 능력치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나 스스로 깨닫고 있다. 그래서 그 능력치를 높이기 위해 공부도 하고, 책도 읽는다. 적어도 나는 평생 내 작은 능력에 만족하며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 하룻밤 사이에 능력이 크게 점프한 적이 있던가? 나는 40 넘는 세월을 사는 동안에는 없었다. 빗물이 바위에 조금씩 스며들듯 그렇게 티도 나지 않게 적셔지고 있다. 내 지식과 내 능력이 다 적셔지고 차고 넘칠 때를 기다렸다가는 아마 늙어 죽는 그 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난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자라고 있다.
나는 내 능력이, 내 지식이 차고 넘치기를 기다릴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본다.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공부하며, 매일 크고 작은 시도들을 하고 있으며 내 육아도 그러하다. 뭐가 내게 맞는지를 알아가기 위해 '나를 고민하고, 내 아이를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조언을 구하고자, 숱한 육아서, 자녀 교육서를 참고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를 알기 위해, 나의 그릇을 키우기 위한 인문서 및 자기 개발서를 읽지 않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나는 늘 뒤죽박죽이다. 엉망진창이다. 이 지식, 저 지식들이 쌓이고 있는 과정이며 완벽하게 체득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 삶이, 그리고 내 육아가 힘겹도록 엉망진창이었지만 그 과정이 구슬을 모으고 있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그 구슬들이 없이 내가 진짜 원하는 내 삶의 모습과 내 육아의 중심, 본질을 깨달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문장을 들여다보자. 먼저는 "구슬"이 있어야 한다. 크고 작은 구슬들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정리는 되어 있지 않아도 된다. 구슬을 모으는 단계는 분류와 정리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서 말"이 될 정도로 어느 정도는 모아야 한다. 여기에서의 "서 말"은 절대적인 양은 아니다. 자신이 가진 그릇의 크기에 따라 양도 달라지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 양이 어느 정도는 차야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 구슬과 그 양이 충분해야 이후의 과정들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꿸 수 있고, 보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구슬을 모으고 있는 과정이고, 그리고 그 양을 늘리는 중이다. 그러니 오죽이나 뒤죽박죽이겠는가. 얼마나 엉망진창이겠는가!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다운 것을 발견해 가기도 한다.
지금의 미국도 처음에는 제각각인 사람들의 엉망진창이 조화를 이루면서 된 것이 아닌가! 나는 오늘도 여전히 그 엉망진창, 뒤죽박죽의 힘을 믿으며 구슬을 더 얻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