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

기냥 놀아.

뉴질랜드 학교들은 속속 긴 겨울 방학을 시작하고 있다. 나의 딸이 다니는 학교는 월요일을 끝으로 긴 방학에 돌입했다. 지난주부터는 거의 매일 학교에서 무비 데이와 디바이스 데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영화 보고 패드 게임만 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반 아이들 중에는 벌써 여행을 떠난 아이들도 있고, 월요일에 집에서 쉬느라 등교를 하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각양각색의 자유로운 영혼들의 긴 휴가가 시작된 거다. 당연히 뉴질랜드학교는 방학 숙제가 없다.


"방학인데 숙제가 있다는 게 이상한 거지."


한국에서 학교를 쭈욱 다닌 나로서는 생소하다. 방학인데, 방학 숙제가 없다니. 한국에서는 방학 숙제가 있다. 그림일기, 슬기로운 방학생활을 포함하여 방학동안 했던 일에 대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가족 신문까지 만들어 가야 했고, 다음 학기 수업을 위해 선행 학습을 해야 했으며, 학원도 빠짐없이 다녀야만 했다. 거기다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엄마는 매일 생활 계획표를 짜기를 요구했고, 그 계획표 대로 생활 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방학이 아주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어렸던 나는 굉장히 짜증스러웠다.


"아니 방학인데, 쉬라며? 근데 왜 학교 안 간다고 더 공부를 해야 하고, 더 규칙적으로 지내야 한단 거야?"


나는 어릴 때 학교를 가지 않는 게 괴롭단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방학 때는 엄마의 촘촘한 감시 탓에 숨이 막힌달까? 또 학원은 또 어찌나 많이 보내는지.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놀면 미래가 없어. 남들 다 공부할 때 너도 이를 갈며 해야지. 이렇게 놀기만 할 거야?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친구들은 다 악기도 열심히 하잖아. 너는 피아노 해야지. 명색이 엄마가 피아노 선생님인데, 피아노 전공 잔데 너 피아노도 못 치고 그러면 어떻게? 피아노를 해야 사람이 클래식해지지. 그리고 수학도 말이야. 수학도 꾸준히 해야 하고, 국어도 잘하려면 책도 꾸준히 많이 읽고, 방학 숙제는 밀리면 답이 없어. 그러니까 계획표 대로 착착해야 된다니까."


엄마는 피아노 전공자셨다. 그래서 가르칠 때 손가락을 틀리기라도 하면 엄마는 자로 손가락을 내려쳤다. 많이 아팠다. 그렇게 무섭게 가르치는 엄마 탓에 나는 지금까지도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한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음악이라는 과목이었고, 피아노라는 악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H.O.T. 를 가장 사랑하고 토니 안은 더더더 사랑했다.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갈 수 있게끔 8할의 도움과 희망을 준 토니 안에게 깊이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의 우상이고 지금도 우상인 H.O.T. 덕에 다시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어쨌든 엄마는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을 만큼 속사포 랩으로 학습에 관해 끊임없이 쏟아 냈다. 산에 가면 폭포가 있고, 강에 가도 폭포가 있고, 집에는 엄마의 침 폭포가 있다. 엄마가 잔소리를 쏟아 낼 때면 엄마의 입을 늘 응시했다. 엄마의 입은 하늘의 별처럼 침이 쏟아져 나와 무지개를 만들고, 끊임없이 말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럴 때면 항상 엄마의 목 양쪽에 아가미가 만들어지고 방안은 엄마의 침으로 물이 가득 찬 바다가 되어 엄마는 헤엄을 치며 방문을 빠져나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나는 엄마의 요구 사항에 따라 지시 사항을 반영하여 방학 생활 계획표를 매일매일 수정했다. 결국 그 생활 계획표란 건 엄마의 생활 계획표였던 셈이다. 그때 엄마는 만족스러웠을까?


"언젠가 내가 커서 엄마가 된다면 나는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야지. 마음껏 텔레비전도 좀 보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잔소리 덕분에 좋은 대학을 나왔고, 좋은 직업도 가졌고, 지금은 평범한 주부로 지내니까 인생이 나쁘건 아니다. 다만 허무할 뿐.


지금 나의 딸이 다니는 뉴질랜드 타우랑가의 학교는 딱 내가 생각하던 유토피아 같은 학교다.


"놀고, 뛰고, 공부는 조금만 해라."


뉴질랜드의 모든 도시가 같은 건 아니다. 그걸 놓치면 안 된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유학을 한다면 공립보다는 사립을 보내는 것이 맞고, 지방의 사립보다는 오클랜드의 사립을 보내라. 오클랜드에서 나고 자란 나의 사촌 3명도 그렇고, 여기서 지내보니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지금은 타우랑가가 좋다.

방학이 되고, 나의 딸은 계속 논다. 어제도 놀고 오늘도 놀고 내일도 놀고, 다음 주도 놀 거다.


"엄마. 오예스! 방학이다. 오늘은 해루질하고, 비치에서 놀고 내일은 로블록스하고, 내일모레는 유튜브 보고. 오 예스!! 그리고 레고도 좀 사주고, 마당에 수영장 물도 채워주고, 워터 슬라이드도 해줘!! 예스!!"

방학이니까 노는 건 당연한 거다. 나는 넌지시 물었다. 방학이니까 방학 계획표를 써봐. 그랬더니 공부는 하나도 없고, 맨 노는 것만 매일매일 착실하게 써 놨다. 공부는 언제 하냐고 물으니,


"엄마. 방학인데 왜 해? 학교에서 선생님이 방학은 노는 거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놀라고 했는데 엄마는 왜 공부하라고해. 그래도 나는 한국인이고, 엄마가 학원은 안 보내니까 내가 조금은 할게. 기탄 1 장하고 한국 소설책 2장 읽을게. 오케이?"


뉴질랜드에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준사립학교가 있다. 내가 경험한 타우랑가 뉴질랜드의 공립은 그냥 풀어놓고 아이들을 키우고, 학업 스트레스가 전혀 없고, 시험 타격이 1도 없다. 그런 게 싫다면 사립을 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성적이나 학업에 대하여 엄청나게 압박하고 그런 건 없다. 다만 부모들이 돈을 내고 학교를 보내기에 학교에서도 나름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조금 더 공부를 한단 거다. 한국의 국제학교나 해외 국제 사립학교 같이 학업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성적 압박이 심하지 않다. 그냥 공립학교보다 학업을 중점에 둔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다르다. 오클랜드는 잘하는 아이들이 많고 학업 위주로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기에 공부, 스포츠, 악기, 드라마, 제2 언어를 열심히 한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한다면 오클랜드가 맞다. 언어와 문화를 체험하고 돌아가야지 싶다면 지방으로 가면 된다. 어쨌든 우리는 지방에서 살고 있기에 학업 스트레스가 없다. 그래서 나는 방학에도 나의 딸이 편안히 놀 수 있게 서포터를 해야만 한다.


"즐거운 방학, 재미난 방학을 위해 서포터를 해요."


방학을 맞이하는 가장 올바른 자세다. 엄마의 역할은 아이가 행복하게 지내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만 해주면 된다. 한국에서 처럼 엄마가 학원가를 다니며 학원 상담을 통해 학원을 선정하고, 좋은 과외 팀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고, 영어 공부를 위해 영어 방송을 틀어 줘야 하고, 좋은 문제집은 없나 찾아봐야 하는 수고가 없다. 그저 아침, 점심, 저녁 잘 챙겨 주고, 사이사이 간식 챙겨 주고, 친구가 오면 친구와 먹을 간식을 챙겨 주기만 하면 된다. 엄마도 편하고, 아이도 편한 것이 뉴질랜드의 방학이다.

뉴질랜드에서의 방학을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는 바로 이거다.


"끊임없이 놀아라. 또 놀고, 지치면 쉬었다 또 놀고, 해도 9시 넘어야 어두워지니까 더 놀고, 내일도 놀고, 매일 놀아라.!"


방금 나의 딸이 그랬다.


"엄마, 계속 놀기만 하니까 좀 그래.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그럴래. 침대에서 책을 읽는 것도 노는 거잖아. 그림을 그리고 색칠놀이 하는 것도 노는 거고. 만들기도 해야지. 수학 책도 좀 더 풀 거야. 영어 단어도 매일 5개씩 외워야지. 내년에 영어 더 많이 늘어서 액설런스 받고 싶어."


아이들은 그렇다. 믿고 기다려 주면 스스로 하게 된다.

어쩌면 뉴질랜드 공교육의 핵심은 바로 스스로 하게 기다려 주는 것. 자기주도 학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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