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중간이다. 사람이 마지막이다. 어떻게 보니 '사람'이라는 단어는 어떤 순서에 넣어도 그 이유가 납득된다. 하지만 그 납득되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울고 또 운다. 늘 꼬리에 꼬리는 무는 생각의 주제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내 열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분주하다.
사람들은 일생에 몇 명의 사람을 만날까? 그리고 몇 명이 주위에 남겨지고, 헤어질까?
어느 날, 중년의 바람이 내 얼굴 주름에 스며들 때쯤, 나도 모르게 이 생각으로 한나절을 보낸 적이 있다. 사실 그 며칠 전, 스쳐간 사람 때문에 밤잠을 설친 그 밤을 보낸 후였다. 정확히 기억한다. 이전에는 이만큼 심각하진 않았는데, 날이 갈수록, 사람이 갈수록, 더 사람을 생각한다. '그 사람'이라기보다, '그런 사람'말이다. 순수한 궁금증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폄훼할 목적은 없다. 이미 마음속으로 다 했으니. 이제는 그저 궁금하다. 왜?
나는 원래 생각이 많았다. 누군가 생각이 많다는 것을 마치 행동이 느린 것으로 몰아가는 것이 싫어서, '생각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을 빨리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나름 배운 것도 많지만, 나 아닌 사람으로 살아드려야 할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했다. 그래서 더 느리게 행동하고, 더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나는 더 편하다. 남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내공이 쌓인다. '예전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맞았구나' 맞장구치다가도, '그건 가스라이팅이었어'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만의 이론들을 정립하면서 환호성을 지르다가도, '어디서 많이 본 글 같은데' 하면서 머리를 긁적인다. 누군가 이미 지나간 길을 나는 이제야 지나갈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서야, 찬찬히 '그런 사람'의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편할까? 어떤 의도로, 의도와 다르게 표현했을까? 어떻게 이기심을 심기이로 잘 포장했을까? 자신의 목적(떠남)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지금의 만남을 그렇게 부정해야만 했을까? '그냥 그렇다 왜 말하지 못할까?'
나도 사람이지만 사람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피조물은 바로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해'가 아니라, 그냥 '스치듯 안녕'하는 인생을 그저 '가슴 시려하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정도가 맞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