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그 무엇. 물론 그 아래에도 무수히 많음.
자기소개만큼 긴장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언젠가 주어진 질문지를 통해 내 소개를 완성해 가며, 마지막 부분에 내 직업의 카테고리를 택해야 했는데 슬쩍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지금 나는, 어릴 때 막연히 떠올렸던 환상을 따라 잘 가고 있는가?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꿈꾸던 그 자리에 앉아 있는가? 사회 초년생으로 세상밖으로 나왔을 때, 그 밤 길 빌딩 숲 사이 반짝이는 네온사인 사이로, 다들 분주히 어디론가 떠나는데, 나만 혼자 외로이 걷는 그 침침한 길목에서 문득 나를 미소 짓게 했던 그 가엾은 미래를 나는 살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려 할 때면, 다들 꼭 먼저 하는 것이 있다. '주위 둘러보기. 아니, 내 친구와 비교.'
그때 같이 수능 봤던 그 친구는 인서울 잘했고, 지금쯤 연봉이 얼마더라, '스타'(스타크래프트의 줄임말)를 할 때면, 못한다고 나를 자기 팀에 끼워주지 않았던 그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정신 차려 직장생활 잘한다더라. 우리 동네에 나보다 잘 사는 집에서 좋은 교육받은 친구는 반전 없이 여전히 아버지 일 물려받아 잘 산다더라. 그렇다더라. 더라 더라. 카더라.
왜 그러는데?
그냥 니가 잘하고, 못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관심 있고, 관심 없고, 그래서 이걸 하고 싶고, 이걸 하기 싫어하고, 그런 거 말하면 안 되니?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니? 그래서 니가 존재감이나 있겠니?
이것저것 넣을 것 넣고, 뺄 것 뻬고, 잘 포장해야지. 참 세상 편하게 산다. 그러니 니가 아직 그 모양이지.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럴 때 늘 내 머리 주위에 두 놈이 따라다닌다.
꺼져.
드디어 건져 올린다. 동그라미 친다. 현실이어야 했던, 현실이고픈, 현실이 될 카테고리에.
살짝 미소를 짓다가, 큰 숨을 내 쉰다. 그럼 어때? 내 인생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