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공에 나를 갈아서 몰입하지 않는 이유
전역 후, 복학했다. 여전하지만 낯설었다. 거의 3년의 공백을 메꾸고 적응하는데 쉽지는 않았다. 친구들이 각자 스케줄대로 군생활을 했기에, 동기들은 흩어지고, 신입생, 복학생, 선후배 뒤죽박죽, 전공수업에도 처음 보는 얼굴들이 반 이상이었다.
당시 기숙사에 살았던 나는 루틴이 아주 단순했다. 강의실, 식당, 농구장, 그리고 도서관. 딱히 동아리활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놀러 다니는 걸 그리 즐기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냥 학교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해야지 해서 하는 게 있고, 해야 해서 하는 일이 있다. 나에겐 공부가 그랬다. 복학했으니 정신 좀 차려 보자는 마음도 있고, 졸업하려면 해야 하니까 하는 것도 있고, 어찌 사는 이유가 단 한 가지겠는가?
그런데 신기했다. 클래스매이트들의 낯섦이 나를 도서관에 더 앉아있게 했다. '학점관리를 잘해 볼까? 혹은 장학금에 도전?'은 아예 생각도 한 적이 없다. 교수님의 사랑? 그게 뭐지?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중요하다 싶으면 하고, 관심 간다 싶으면 하는 스타일이다. 꾀 계획적이기도 하지만 즉흥적일 때도 많다. 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다가도, 바다 보며 멍 때리는 시간도 가끔 있었다. 하루종일 농구만 하다 강의 시작 직전(데드라인)에 리포트를 제출한 적도 가끔 있다. 도서관에 공부하다가 달빛이 밝은 날이면 친구 놈 하나랑 바다 보러 간다고 훌쩍 떠난 일도 있고, 도시에 페스티벌이라도 있는 날이면 열일 제쳐두고, 차 있는 친구 꼬셔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상하리만큼 좋아하는 과목은 찾아다니며 탐구하다가도, 별 시원찮은 과목은 꼭 3번은 결석해 보려 노력했다(3번까지 봐주신다).
복학 후 첫 학기 성적이 나왔다. 과에서 2등. 나도 놀라고, 교수님도, 친구들도 놀랬다.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내가 알고 네가 아는데? 다들 그런 눈치다. 나도 기쁨보단 어리둥절했다. 시험들이 다 어려웠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다른 이들의 성적을 알 길이 없으니. 결과만 통보받았다. 장학금 받아 가라고. 와우!
나도 나를 돌이켜 보았다.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도서관에 앉아서 집중하는 시간이 비교적 많았다. 운동할 땐 운동하고, 막 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은근히 다닐 거 다니면서도, 집중할 땐 전화도 꺼놓고 공부했다. 복습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리고 필살기 오답노트! 돌아다니는 족보들 한번 풀고, 오답만 봤다. 갠적으로 지식을 나열하는 문제보다, 배운 것에 내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 서술형이 좀 쉽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늘 많았고 할 말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보다 대학공부가 좀 더 맞은 듯했다. 그 학기는 그렇게 보낸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최고 성적이었다.
왜? 허무했다. 이전보다 아주 조금 더 몰입했다 생각했는데, 성적이 쑥 오르다니! 중학교 때는 꾀 공부를 잘했는데, 그 이유는 학원 한번 가 본 적은 없지만 수업시간에 아주 집중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혼자 나중에 생각해 보았다. 머리가 특출 나거나, 따로 공부한 게 없으니 그 이유 밖에. 역설적이게도, 그 장점이 피크를 찍는 순간, 나는 허무를 느꼈다. 이 정도 몰입했는데 2등이면, 며칠만 밤을 새어도 일등인데... 언제든, 몰입만 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이후로는 공부에 그만큼 몰입하진 않았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니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움은 있지만, 몰입하면 된다는 공식을 실제로 경험했기에, 자신감은 생겼다. 그리고 다른 일들, 내 인생에 의미 있는 일들에 몰입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꼭 나의 몰입의 결과가 탁월함과 우월함과 경제적 부를 이루는 결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꼭 결론은 돈, 성취, 우월, 잘됨으로 끝나는 글과 인생은 나는 별로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기에, 좀 적당히 가지고 있으면, 돈에 몰입하지 말고, 성공에 몰입하지 말고, 인생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사는 삶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면, 참 한가한 인생 산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좀 생각이 다르다고 외면하는 친구들도 있었던 것 같다.
몰입은 누구에게나 있는 특성이다. 나를 파괴하면 중독, 나를 꽃피우면 몰입이라고 하지 않는가! 당신은 무엇에 몰입하는가? 그것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늘 질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