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기
등록해버렸다.
이래선 안된다 생각한 지 수개월째.
새해가 시작되고 은근 혼자 결심한 것이 있다.
남들처럼 거창하게 말은 못 하겠다. 작심삼일은 이제 잊고 싶은 단어이기에.
많이 썼다 아이가.
아침에 독서, 그리고 일주일에 3일 운동.
아직까지 아침독서는 잘 되고 있다. 다행이다. 습관 되버렸다. 하하.
sns에 올라온 '무슨 챌린지', '이 동작 따라 하면 뱃살 싹 빠짐'. '나는 이렇게 했다.'
그런 짤 영상만 보고서는, '이렇게 나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 마음만 먹으면 되지, ' 생각은 한다. 문제는 마음을 안 먹는다는 것.
그냥저냥 1월이 훅 지나갔다.
수영과 헬스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동네 스포츠센터에 갔다. 설명만 들어볼까 했는데 결제하고 있는 나.
원래 J인데 이럴 땐 P다.(MBTI 끝자리, 이 검사 가끔 안 맞는다)
모르겠다. 일단 해보자. 수영을 먼저 하고 헬스를 할까? 아니, 헬스하고 땀 흘리고 수영할까?
몰라. 그냥 가자. 준비물 챙긴다. 아주 예전에 사놓은 운동복이 제발 작지 않기를, 아니 작아서 새로 살 수 있기를, 아니 그렇게까지 몸이 변하지 않았기를,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지금 떨고 있니? 약간 긴장했나?
새롭게 시작하는 설렘이라 해두자.
운동복, 수건, 세면도구, 운동화, 수영장비 등 챙겨서 길을 나선다.
설렌다.
오랜만이다. 50미터를 가로지르는 그 느낌.
물론, 사람이 많을 땐, 몇몇이 나를 추월해 가지만, 그러면 어떤가?
수영이 인생같이 느껴진다. 길이가 나보다 짧으면서도 저리 힘차게 뻗어가는 애들을 볼 때, 흰머리, 혹은 민머리 아저씨(제발 할아버지는 아니길)가 보란 듯이 나를 추월해 갈 때 그 느낌! 아~ 지금까지 나는 느리고 오래 헤엄쳐 왔다. 마치 내 인생 같다. 한방은 없지만, 언젠가는 저기 맞은편에 다 닿아 있는, 그리고 또 돌아오고, 먼저 가는 사람 보며 숨 한번 고르고, 또 출발하는...
그 트랙은 나와 닮았다.
대학 4학년, 대학원을 열심히 준비하면서, 체력이 있어야 공부한다! 핑계로 학교 앞 헬스장 등록했다. 30-40분 운동했나? 동네 어깨아저씨가 늘 같은 시간에 오셔서 근육자랑을 해대셨다. 등 뒤에 문신을 보면서, '무슨 파일까? 어느 정도 직책일까? 덩치는 작은데 근육이 울그락불그락, 너랑 싸우면 네가 이길까 뒤지게 맞기만 할까? 아내는 있으실까?' 이런저런 우리만의 소설 쓰면서 뒤에서 수군거리다가, 가자!
목욕탕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1시간 30분, 수다와 함께 몸을 풀었다. 운동하러 갔는지 목욕하러 갔는지. 사우나에서 논하는 인생의 맛이란~헬스 마치고 가는 할머니식당 비빔밥은 말해 뭐 해.
그 이후, 잊고 있다가 가끔 헬스장을 기웃거렸지만, 혼자라 재미없다며 몇 개월 못했던 기억이 전부다. 그런데 이제야 왔다.
빼자. 그래 세상에 빼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언젠가 내 옆머리에 흰머리 몇 가닥이 올라오니 딸들이 '아빠 흰머리다'. 나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인사도 없이 다가온 그 가닥들이 영 반갑지 않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 없지 않나. 그만큼 인생의 고민이 차고 찬 건 아닌지.
그래 빼자.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해결된 건 하나도 없다. 인생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러니 그렇게 고민을 데리고 살 필요가 없다. 많아도 걱정, 없어도 불안한 게 인생 아니던가. 생각이 많으면 내 흰머리, 주름만 늘어간다. 나이만 들고, 해 놓은 것 없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나는 짐을 싸서 GYM(헬스장)에 간다.
그래, 물론, 살도 좀 빼야 한다. 어릴 땐, 좀 가진 것 같은 중년이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때쯤이면 인생이 좀 편해질 거라 생각했던 한참 철없고 고생 많았던 10대 시절이 떠올랐다. 그런데 중년이 되니, '그래, 그때가 좋았어~' 나 좀 이상하다.
진짜 나이를 먹은 건가. 나온 배만큼 내 인격과 지혜도 커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속에 가득한 탐욕과 게으름과 후회와 염려들도 좀 빼자.
누군가 말했다.
"우리의 내일은 누구도 살지 않았던 새로운 날이다. 그러니 그 모험을 즐겨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내일 아닌가!"
무엇보다, 내일의 두려움을 좀 빼고 싶다.
어깨가 쑤신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이거 들고, 저거 당기고, 옆 사람 의식하며 러닝머신 속도를 좀 올렸다. 참 인간이란... 이것도 저것도 그냥 마 확 다 빼고 싶다.
아 근데 싸하다. 이전에도 이러다가 몇 개월 못 간 기억이 있는데...
참, 이전에 못난 나도 좀 빼자.
이제는 좀 달라져보자. 그래 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