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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생긴 일

한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by 장시무

매번 다녀오고는 '다시는 안 간다.'(했지만 벌써 세 번째다)했는데 이번엔 2주를 묵을 예정이다. 4일은 장인어른 칠순기념 여행으로, 장인, 장모님과 함께. 그 이후에는 우리만 머문다. 우붓, 스미냑, 그리고 짱구, 돌아가면서 며칠씩 지내기로 했다. 시간이 짧아서, 나이를 잊게 만드는 스케줄로 돌았다. 또 언제 우리가 이렇게 만나겠는가? 재밌고, 아쉽고, 죄송하고, 감사한 시간을 보냈다. 나름 사위로서 뿌듯했던 시간이었다. 아내가 아주 일정을 자알 짜주어서, 재밌고, 살 빠졌다.


그렇게 아쉬운 이별을 한 뒤, 숙소에 돌아왔다.


홍이삭과 소수빈의 대결, 싱어게인 3. 하루종일 유튜브로 보고, 듣고, 수영하고, 시켜 먹고, 구경하고, 마시고, 또 보고 듣고, 반복이다. 하루 한 번만 오토바이에 몸을 실어 카페에 가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숙소에서 음악 들으며 소파에 몸을 기댄다. 다행히 애들도 물 만난 물고기다 한나절 수영하고, 먹고, 또 수영하고, 아이패드에 간식에... 뭐 천국 바로 밑 아닐까?


나는 홍이삭이 일등 할 것 같았다. 뭔가 큰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을 가진 가수다. 그런데, 내 마음을 빼앗은 건 소수빈이다. 그 맑은 목소리가 묘하게 매력 있다. 약간 심심한 듯 하지만, 긴 호흡 속에 스며든 감정이 마음에 오래 머문다. 여행 내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심사위원 심사평도 외울 정도다. 그냥 뭔가 기교를 평가하거나, 편곡의 세련됨으로도 이 느낌을 다 담을 순 없다. 특히 이어폰으로(꼭 유선 이어폰으로) 들으면 귀에 속삭이는 것 같다. 성시경하고는 좀 다르다. 성시경은 자란 능구렁이라면(좋은 의미다), 소수빈은 소년 능구렁이다. 심심하다 싶을 때, 한방 치는 게 각 노래마다 있다. 선곡이며, 구성도 아주 영악할 정도다. 그 이후 소수빈에 빠져서(남자에 절대 빠지지 않는데) 집에 돌아와서 일 년 내내 쇼핑 갈 때도, 바다 갈 때도, 자기 전에도, 자전거 탈 때도, 늘 최우선 플레이리스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노래만 들으면, 발리 생각이 난다. 지나가다 발리가 생각나면 소수빈의 노래가 떠오른다. 그가 경연에 부른 곡 중에(참 어렵지만) 최애곡을 뽑자면 'Try again'. 잘 알려지지 않는 노래고, 나는 처음 들어보았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무의미하지 않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거라고, 지난날이 말해주고 있는 걸'

모르겠다. 그냥 이 한 문장이, 그때 나에게 뭔지 모를 울림을 주었다. 꼭 '사랑'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 가사를 음미할 필요는 없다. 누가 보면 지지부진한 삶일지라도 무의미하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고 있으니, 괜찮다고 다독이는 듯했다. 발리도 가고, 장인장모님도 잘 모시는 꽤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산다고 하겠지만, 지난날과 또 마주해야 할 앞날에 대한 고민이 돌아갈 날이 다가올수록 더 힘겹게 느껴졌다. 가장으로서, 또 여러 관계 속에서 40대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짐이겠지만, 쉽지 않음을 매 순간 느끼며 산다.


발리는, 뭘 구경했고, 뭘 먹었고, 어딜 갔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게 이번 발리여행은 위로받은 시간이었다. 지금도 이 노래가 귓가에 들린다. 그는 나를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로 자주 만난다.

발리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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