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지의 세계를 처음으로 동경하다

그래서 자전거를 좋아한다.

by 장시무

아버지가 자전거를 사주셨다. 뒤에서 잡아주셨다.

학교 운동장에서 두세 번 만에 홀로 달리는 내가 엄청 대견하게 느껴진 기억이 있다.


성인용이다.

앞으로 내가 계속 클 테니까. 지금 내가 아빠니까 이해된다. 그때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옛말) 2학년이었다. 또래보다 키가 조금 더 크다는 이유로 인생 첫 자전거 수업은 성인용과 함께 했다. 나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했다 싶지만, 형편상, 계속 사줄 돈은 없는 것을 아시고, 또 아들이 곧 자랄 것을 아셨다. 현재와 미래를 냉정하게 바라보신 후 내린 현명한 결론이었다. 어쨋든 내가 잘 탔으면 된 거 아닌가.


너무 재밌었다.

온 동네를 누볐다. 생각하면서도 웃기다. 폭주족은 아닌데, 자전거로 무리 지어 다녀서 동네가 좀 소란스러웠다. 그땐 게임기, 인터넷, 핸드폰, 그런 거 없던 시절이라 학교 다녀오면 온 동네 다니며 그냥 놀 때였다. 학교 운동장, 놀이터, 축구, 잡기놀이 등 하나하나 졸업할 때쯤인가, 자전거 실력도 늘어서 꽤 먼 곳까지 다녔다.


당시 우리 고향 땅 바다 쪽으로 택지가 들어섰다. 바다를 흙으로 막아 간척해서 택지를 조성했다. 땅이 굳고 집이 지어질 때까지 평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동네 누군가가 그 소식을 듣고 자전거 타기 좋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 동네, 찻길을 지나, 너무나도 낯선 광경이 펼쳐진다.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옆동네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에는 바다가 보이고 그 직전까지 택지가 보였다. 바람을 가르고 신나게 달린다. 약속이나 한 듯, 결승선을 향해서 전력질주한다. 와... 내가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니! 늘 사람 많고 차가 다니는 골목골목을 달리다가 이렇게 넓은 길, 차도 사람도 없는 길에서 달리는 건 생애 처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택지를 아지트 삼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녀오곤 했다.


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다. 내 인생에 처음 낯선 곳에 내 발로 간 건 처음이었다. 아마 많아도 11살쯤이었을 것이다. 그땐 한국은 그랬다. 그 나이에도 부모 없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었다. 그 여행을 했다는 자체가 동네 자랑거리가 되어서 전설로 남게 되었다. '누구누구가 갔다 왔다더라. 거긴 온통 땅 밖에 없다더라. 아무나 못 간다더라. 엄청 멀다더라. 거기 곧 집이 지어지는데 그전에 가봐야 한다더라. 저 끝에 나쁜 형들이 밤마다 온다더라. 카더라 카더라 카더라'


얼마 되지 않아 공사가 시작되고 더 이상 우리는 가지 못했다. 자전거와 함께 한 미지의 세계여행은 그리 길지 못했다. 늘 이런 건 꼭 짧다.


몇 년 후

중학교에 들어가서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어느 따뜻한 봄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깜빡 졸아서 한 정류장을 더 가게 되었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너무 놀라 얼른 벨을 눌렀다. 다행히 바로 다음 정류장에 급히 내렸는데... 왠지 보이는 광경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어 여기가... 혹시 거긴가? 몇 년 전 어릴 때(지금도 어리지만) 자전거 타고 왔던 그 먼 동네 아닌가!

반가움과 동시에 허무함이 몰려왔다.

겨우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였다니...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너무 작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그 세상에서 나는 그저 작은 한 사람이구나."


지금도 그 기분은 마음에 새겨져 있다.

그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그 심장이 뛰는 느낌을.

그때 함께 했던 동네 형, 친구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버지가 사 주셨던 그 성인 자전거는 아직도 기억난다.

9살 때 사주신 성인 자전거.



keyword
작가의 이전글드디어 2025년 올해 계획 하나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