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의 엔트로피

매번 실수하고 후회하며 상처받는 이들

by 연감자


영원한 것은 있을 수 있을까.


영원한 것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그 대상을 사랑했다는 사실, 나의 세상이 끝나도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남겨진 이야기는 잔여 한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져도, 무한한 시간 속에서 시간의 실재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영원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로 분명 무한히 흘러갈 것이다.

내가 아빠를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라는 영원, 엄마를 볼 때마다 아렸던 기억과 엄마가 아빠에게 가는 날 그 이후에도 난 두 사람을 영원토록 사랑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장담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실수를 곧장 저지르곤 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이 영원히 내게 향할 것이라는 믿음, 이 사람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들이 나와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절대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게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 그들은 나에게 절대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수많은 역사와 이유가 있음에도 따뜻한 손길, 나의 밥을 챙겨준다는 자그마한 호의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주인에게 평생 자신을 맡기는 강아지들처럼.


그렇기에 우리는 잘못을 하고, 후회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속수무책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된 선의 안정성을 불안해하며 걱정을 안은 채 사회관계망 사이에 엉켜있다.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제2법칙처럼, 우리의 실수는 항상 우상향 하여 총량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절대로 했던 실수를 지우거나 돌이킬 수 없다. 이러한 실수들과 잘못으로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어 결국 후회의 계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진다.

사무실 모니터의 한구석에 붙어있는 메모에는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말 것'이라고 적힌 빛바랜 문장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의 신조를 거기에 붙여둔 까닭은, 이제 상처와 후회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도록 항상 마음을 비워두려 하는 다짐의 목적이다.


그럼에도, 그 문장을 매번 되새기고 되뇌어도 어느 순간 이 사람을 믿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 비워둔 마음을 채워주는 사람이 다가온다. 영원의 힘을 살짝 녹여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사라지지 않게 굳어지도록 덧바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기대와 바람을 계속해서 틀어막아도 한사코 조금씩 빠져나와 결국 또다시 후회를 반복하게 만들어버린다. 지난한 노력들은 또 빈틈을 보이고 눈물을 튀어나오게 한다. 받아버린 상처들은 오래도록 나의 마음에 자상을 낸다.




그러나 유일하게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고립되지 않은 개방된 상태의 경우다. 개방된 상태는 곧 생명체의 활동이다. 우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와 상처를 통해 아파한 시간만큼 그 실수가 저지른 결과들의 엔트로피를 낮추는 것이다. 우리에게 평범하고도 무난한 일상들은 이렇게 엔트로피를 낮춰가며 그로부터 성장하고, 마음의 자창들을 치료하며 더욱 단단해져야만 받을 수 있는 결과인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나 잔인하도록 주고받음을 요구한다.


이미 저질러버린 실수와 그로 인해 받은 상처, 앞으로 오래도록 기억할 후회들로 인한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무섭고도 아프고 아리도록 서럽지만 내가 자초한 것은 온전히 상처받아야만 한다. 그래서 유연을 배워보려 한다. 무작정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으며,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꼿꼿하게 버틴다면, 그 그물망에서 나는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게 될 것이다. 유연함을 조금 곁들여 내가 주체가 되어 그물망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마음의 여유와 부드러움으로 유영하고 싶다.


마음을 꽁꽁 봉해 닫아버리지 않고, 우편함을 마련하여 그곳에 나의 조그마한 마음을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준비해 둔다거나, 다른 사람이 보내준 마음을 읽고는, 그저 집 한구석에 보관하다 의지하고 싶거나 생각이 떠오를 때, 한 번씩 읽어 보는 딱 그만큼의 적당한 연결고리를 나는 준비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우편함에 편지가 오길 기대했지만 오지 않은 순간에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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