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하는 궂은일
출근길, 전날의 야근으로 인해 무겁게 셔틀에 탑승하여 의자에 앉았다. 그때, 내 시야에 보인 앞 의자에 붙어져 있는 엑스 자의 보안스티커. 다니고 있는 회사에 출근할 때는 카메라 렌즈에 보안스티커를 붙여야 한다. 나는 보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귀찮았다고 한들, 귀가하여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도 어려웠던 걸까. 퇴근길에 창문으로 보인 무언가를 도무지 놓칠 수 없어 카메라가 필요했던 걸까. 그러나 내가 그 스티커를 떼어낼 의무는 없기에 그저 스-윽 보며 붙인 사람에 대한 약간의 분노와 이해를 잠깐 떠올려 보고는, 이내 흩트려버리고 시선을 핸드폰으로 옮겼다.
며칠이 지나고, 그 스티커가 붙은 의자 바로 뒤에 또 앉아 마주치게 되었다. 그 스티커는 아직 아무도 제거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떠한 변화도 없이 거기 그 자리에. 이를 그간 본 그 누구도 제거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근원을 만든 주인에 대한 원망이 잠깐 떠올랐지만, 나도 이를 떼어내지 않았기에 그 군중에 자진하여 입장한 셈이었다. 이 군중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쯤은 있겠지, 생각하며 누군가 이를 떼어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하겠거니 또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네다섯 번을 마주쳤지만 애써 외면했었는데, 6번째 정도 되었을까. 지친 발걸음으로 셔틀버스에 앉아 출근하는 아침, 또 이 자리에 앉아 그 스티커를 발견했다. 나도 참 고정된 자리를 잘 벗어나지 않는 강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짧은 몇 초간 인지하며 그것을 응시하다가, 돌연 떼어내어 뭉쳐버리곤, 나의 가방 안에 넣어버렸다. 그러자 몇 차례 그 스티커를 마주하면서 느낀 어떠한 불편감을 떼어낸 것 같았다. 그렇게 그 스티커를 회사에 도착하여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 사회에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즐비한다.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행동을 '굳이'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거나,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하겠지라며 외면하고 발길을 재촉하거나, 고용을 통해 궂은일을 시키며 '굳이' 그 일을 한다며 무시를 서슴지 않는다거나.
착함과 나쁨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물을 마시는 것이 착하거나 나쁜 행동이라고 하지 않듯, 그것들은 의례 각각의 본성이나 자신이 생각했을 때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이겠다. 어떤 것이 착하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라벨을 붙일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 가령, 어딘가에 들어갈 때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준다거나,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 늦게 들어올 때 '열림' 버튼을 눌러 준다거나, 용변을 보고 나서 화장실 변기 뚜껑을 올려둔다든지, 매일 고생해 주시는 미화원분들과 반갑고 다정하게 인사하며 짧은 안부를 묻는다든지. 그러한 일들을 물을 마시듯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굳이' 한다는 것은 '굳이'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에너지를 더 소모하는 일이다. 참으로 소중하고 따사로운 마음이다. 그 마음을 받을 때, 상대방의 마음에도 작고 따뜻한 꽃이 한 송이 번져간다.
최근, 성격 검사를 한 결과지에는 과하게 높은 점수를 받은 항목이 있었다. '연대감'
높은 타인 수용과 공감, 이타성, 관대함의 점수를 받은 검사지를 보며, 내 성격을 조금 탓했다. 착하지도 않은 난 왜 그렇게 피곤하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행동을 보며 기어이 이해하려 들까. 피곤한 오지랖만 부리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계속해서 헤아려 보려 하지 않기만 해도, 하루를 마치고 누운 침대의 나는 조금은 더 기운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이 겨우 이런 사람일 뿐이다. 스티커를 떼지 않은 것을 보면 신경이 쓰이고, 외면하려 해도 결국에는 떼어버리는 사람. 다른 이가 이를 눈치채고 누군가가 떼어낸 자국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개운함이 생기길 하는 바람, 나의 에너지를 써서 '굳이'한 행동들로 인해 그 배려를 알아차리는 사람의 마음 한 부분에 작은 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그저 곁에 많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 어제보다는 하나만 더 '굳이' 행하는 마음들이 생겨나 우주에서 먼지보다도 더 작은 우리의 세상에 배려가, 스며드는 얼룩처럼 번져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