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고 저릿했던 마음의 기억
'마음이 아리다'라는 느낌을 알게 해 준 사람이 있다.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아리고 저릿한 사람. 나의 가장 큰 약점.
2006년, 어머니에게는 7살, 10살 고사리만 한 손에 양손이 잡혀 갑작스레 홀로 모든 짐을 떠안게 되었다. 그즈음부터인가, 나는 무엇을 사달라고, 용돈을 달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고, 할 수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돈을 벌어올 수 없는 아무런 힘이 없는 작은 아이였고, 문제집을 사 달라, 학원을 보내달라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깨진 독에 돈을 붓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갑갑하고 답답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힘든 일들은 어머니에게 모두 털어놓지 못하게 되었고, 당신이 더 힘드니까 굳이 나의 짐까지 얹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학생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서, 취업을 하고 당신에게 돈이라는 힘이 될 수 있도록 홀로 설 수 있는 막연한 멋진 어른이 되고자 다른 것들은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 때,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남모를 속앓이와 힘든 일들이 당신 가슴에 혹으로 머물고 뭉쳐져 유방암 2기가 판정됐다. 그러나 어머니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일을 그만두면, 이 가족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직장을 다녔다. 그 당시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바보같이 몰랐던 중학생은 아침저녁으로 화장실에서 토를 하며 힘들어했던 당신을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오늘도 학교에 가며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이 셀 수 없이 많았던 중년의 아름다웠던 여성은 이제 모두 힘을 잃고 빠져 이를 가릴 수 있는 촌스러운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고, 걸려있는 가발과 한쪽 가슴의 칼자국을 볼 때면 마음이 찌릿하게 소리가 나며 틈새가 갈라지고 깨졌다.
사실 나의 당시 고민과 불안과 걱정은 어머니에게 비교할 거리조차 되지 못했지만, 당시 좁은 시야만을 가지고 있던 나는 당신의 여성으로서의 감정은 고려조차 못한 채로 고아가 되면, 나와 동생만 남겨지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도 한편에 준비됐다. 나 자신이 참 아쉽다. 그때 조금 더 어머니를 챙길 수 있었다. 공부 까짓것 조금 덜 한다고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병원을 함께 가드리고, 밥도 내가 더 차리고, 동생을 더 챙길 수 있었다. 공부라는 핑계에 숨어 항암치료를 받으며 직장을 다니는 당신의 뒷모습만 보았다. 화장실에서 쭈그려 앉아 힘들어하는 당신의 뒷모습, 그 상태로 밥을 챙겨주고 출근하는 뒷모습. 난 한참 당신에게 모자란 딸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어머니는 호전되었고, 몸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와 음식들을 잘 챙겨 먹으며 나와 다르게 너무나도 강인하고 지혜로운 당신은 완치 판정을 받았다. 고등학생, 재수생 때까지 나는 어머니의 작은 월급으로 계속 공부했고, 대학생 때부터 그 작은 월급을 이제는 건들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더 움직이면 되었다. 주말에 알바를 하고, 평일엔 조교 일을 하며 꿈꾸던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바보 같은 딸이 아닌 당신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지금이 학창 시절을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이제 당신은 내가 챙길 수 있는 사람이다. 산발적으로 '소녀 가장'이라는 나름의 타이틀을 붙들고 있는 것이 요란스럽고도 무거운 짐 같지만, 그 시절을 지나온 어머니의 무게에 비하면 하찮은 것일 테다. 그래서 중학생 때부터 어머니까지 나를 떠난다면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과, 혼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나를 '최선'이라는 감옥에 가두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주말의 어느 하루, 이틀의 날엔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 내 곁을 떠나게 되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많이 들어주고, 가지고 싶다는 것들을 사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드리려고 온 힘을 다한다. 그러고도 집에 가는 버스를 타며 당신과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고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면 그 자리에 뿌옇게 눈물이 차지한다. 이번에 난 최선을 다했나.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들이 나를 찌른다.
부모님에게 후회를 안 할 자식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것을 안다. 나는 무슨 일을 해도 결국 마지막의 날에는 후회할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중학교 2학년의 내가 서있다. 벗어나려고, 할 수 없었던 거라고 인정하려 안간힘을 써봐도 눈을 가리면 그때의 나로 돌아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했던 초라한 나를 떠올린다. 이내 눈을 뜨고 다시 최선을 다짐한다. '최선을 다하지 말아 봐라'라는 상담 선생님의 숙제는 너무나도 나에게 어렵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주름이 지어가는 당신은 나에게 너무나도 아름답고 소중하며, 내가 언젠가 다 타버리더라도 위험에서 지키고 싶은 가장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약점이다. 최선을 다하는 일이 가끔은 버겁지만, 그것이 의도치 않게 나의 강점이자 단점이 되었지만,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기에 그저 내가 이겨내야 하는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