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에서 발 떼기
나는 몸에 항상 힘을 주고 있다. 적을 발견한 옛 선조들은 긴장 상태가 자신을 지켜주고,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여겨, 이렇게 진화해 왔을 것이다. 내 조상님은 특별히 유달리도 더 긴장하셨었나 보다. 회사에 있을 때도,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글을 쓸 때도 매일같이 긴장하고 있었던 나를 사실 알고 있다. 긴장하지 않은 척해도 떨리는 두 손은 항상 남들에게 들키고 만다. 팔의 근육, 허벅지의 근육, 종아리의 근육이 어떤 때에는 파르르 떨려 그 소리마저 들킬 것 같아 몸의 힘을 빼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수많은 마인드 컨트롤 언어들은 근육까지 컨트롤하지는 못한다.
회사에서 있을 때,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말해야 하는 순간들에 특히 몸이 자동으로 긴장상태가 되어버린다. 업무를 할 때 일을 완벽하게 실수 없이 끝내고자 하는 마음에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가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나 발표를 할 때에는 내가 지금 이상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 긴장하며 근육들이 제멋대로 나를 다루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본다. '너는 지금 안전해'를 수십 번 쳇바퀴를 돌려 뇌에서 근육에게 전달해도 수신이 잘되지 않나 보다.
선생님은 내게 최선을 다하려 하지 말고 한 30%는 남겨두어 보라고 하셨다. 처음 들었을 때 도무지 할 자신이 없었다. 원래부터가 난 최선을 다했으나 그래도 무언가가 잘되지 않았을 때 '나는 할 만큼 다 했어'라고 큰소리칠 수 있는 걸 원칙으로 삼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30% 남겨두면 나는 오늘 하루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지 않았음에도 편히 잠을 잘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며칠간 30% 남기는 연습을 해봤지만 8 ~ 9시쯤 업무를 마무리해 버리고 회사를 나서는 것이 잘 안 되어서 일을 더 붙잡고 있다가 10 ~ 11시 퇴근을 했다. 나를 구석에 몰아세울 수 있을 만큼 몰아세워서, 6면이 다 벽으로 된 상자에 나를 가두고 넌 아직 부족하다며 못살게 굴었다. 몸은 한계치를 임박했고 더 이상 어디로도 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겹겹이 갇히자 그제야 나는 설렁설렁을 실천해 보기로 결심했다. 하루의 중간 즈음 너무 일에 몰입한 순간, 한 번 쉬어간다. 커피를 타러 가거나 잠시 다른 층을 한 바퀴 걷고 온다. 그러면 내 에너지를 풀 악셀을 밟다가 살짝 악셀에서 발을 뗀 느낌이 들었다. 8 ~ 9시에 퇴근해도 12시간은 근무한 셈이지만 속도를 더 높이지 않고 몸의 긴장상태를 살짝 풀은 채로 일한 후에 그 시간에 퇴근을 하니 이제야 숨이 조금 쉬어진다.
나는 나를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였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빌미로, 그동안 살아왔던 습관과 환경을 핑계로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긴장 상태로 돌입한 내 상태가 기본인 것이 당연하다는 듯 굴었다. 그 긴장 상태가 당연하여 이렇게 사는 것이 올바르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그래서 원래 상태를 잃어버렸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무엇에 나를 던져서 극단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더라.
이전보다 조금 느슨해진 마음으로 30% 정도만 남겨도 퇴근하고 집에 갈 때 저 차에 치여서 내일 출근 안 했으면 좋겠다, 범죄에 연루되어 내일 출근 못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는 들지 않았다. 나의 잃어버린 기본 상태를 되찾고, 긴장된 근육과 떨리는 손을 멈추기 위해 악셀에서 잠시 발을 떼야겠다. 잠시 떼어도 차는 앞으로 나아간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예 멈추는 게 아니라, 속도를 잠시 높이지 않는 것이다. 몸의 떨림들에게 지금 이런 속도도 괜찮다고, 넌 안전하다고 들릴 때까지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