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옥한 토양

두려움에 자연스러운 회복력이 깃들기를

by 연감자

도대체 난 어디에서 마음이 편안할 수 있을까.


난 오래전부터 수전증이 있다. 학창 시절이었을까. 아니다, 재수를 시작할 때 즈음부터인가. 최근에는 조금 더 심해졌다. 내 마음이, 내 몸이 지금 편하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무엇을 전달할 때, 글씨를 쓸 때 떨리는 손을 보고 있기가 참 한심하다. 왜 그렇게까지 아무도 나를 위협하는 것은 없음에도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리는 걸까.


내가 언제, 누구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한지 생각해 보기 전에 더 쉬운 것부터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에 끝없는 두려움을 느끼는가. 무엇이 그렇게도 사시나무 떨리듯 무서운 걸까. 나는 내가 어떠한 작은 파동에 무너지게 될까 봐 두렵다. 사랑하는 엄마를 잃을까 매일 걱정이 한 줌 남아있다. 내 곁에 얼마 되지 않는 나를 챙겨주는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잃을까 무섭다. 그것이 내 실수로 인한 것일까 봐. 그러니까 난, 무언가를 잃을까 봐 참으로 걱정인 것이다. 마치 손에 쥐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것을 모두 뺏겨본 적 있는 아이처럼 경계심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나를 사랑할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음에도 소중히는 여기고 있는 듯하다. 내가 무엇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한 것이 아닌가. 내가 나에게 참 못나게 하고 있는 듯했는데 실은 누구보다 더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어쩌면 온몸으로 나에게 올 불행들에 대비하고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만한 불행들을 대비하는 값으로 손이 떨리는 것을 내주어야 한다면, 꽤나 값싼 거래일 것이다. 삶 전체를 망가뜨리는 게 아닌 그저 수전증 정도라면.


자기 연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이 고통에 대한 동정심이나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애도를 멈추지 않고 싶다. 상실로 인한 슬픔을 표현하는 일. 나는 이를 수전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끝없이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추모하는 일.


토양을 재생하는 방법 중 하나로는 토양을 갈지 않아 토양 구조를 보존하고 토양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 있다. 토양의 자연적인 회복력을 활용하여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적인 회복력. 상실로 인한 기억들을 수확하여 한쪽 편에 두고 자연스러운 회복을 하는 과정의 한복판에 있는 중일지 모른다.


두려움에 대한 감정들을 그저 자연스럽게 두는 것. 내가 어디에서 편안한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상실과 두려움 슬픔과 행복 등을 활용하여 내 안의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 내 땅은 때로는 울창할 때도 있을 것이고, 울창하지 못하고 다 져버릴 때도 있을 것이다. 울창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에 대해 이것저것 파내고 헤집어 두지 않고 그저 토양을 덮어두는 것. 떨리는 마음들에 자연스러운 회복력이 깃들기를. 이를 위해 그저 일상을 살아내고 느껴낼 것이다. 비가 오면 오도록, 바람이 불면 불도록. 그것들이 토양을 완벽하게 만들어내지는 못할 테지만 비옥해질 순 있을 것이므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