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눈

충전과 방전의 반복

by 연감자

'우울'은 3년간 나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갈구했다. 1년간은 그저 무기력하게 그가 나에게 하는 모든 말들에 나의 불안을 제곱하여 사정없이 수용했다. 나는 그가 하는 모든 말에 대한 마땅한 책임감 따위가 있었다. 나에게는 그만해 달라는 애원을 할 자격조차 없어서, 그저 쓴 약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형체를 보지도 않고 잔뜩 움켜 집어 물로 삼켜 넘겨버렸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그들이 산산이 녹아 나의 세포들에게 영양을 공급하여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어내겠지라는 처연한 짐작으로.


1년이 지나고, 삼켜도 삼켜도 더욱 늘어나는 그들이 이제는 나를 삼킬 것 같은 무력감과 눈이 마주쳤을 때, 조력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대적할 자신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주할 자신은 없어 마주친 눈을 피하며 약들의 도움을 받았다. 연한 핑크색, 하늘색, 하얀색 파스텔의 채도를 가진 약들은 내가 잠시 한눈을 팔며 스르륵 잠으로 도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기 전 틀어두는 아무 유튜브 영상과 약들이 나를 조금이나마 숙면으로 끌고 가주어, 배터리는 고속 방전을 하였지만 저속 충전은 가능했다.


1년이 또 지나며 약의 수가 늘어날수록 어느 정도의 충전이 가능해졌다. 회사에서 나오는 알감자를 따뜻하게 데우는 2분 30초의 시간, 책을 읽으며 사람의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의 색을 나에게 칠하는 시간, 글을 쓰며 한없이 흑백인 나의 머릿속의 감정에 선명도를 높이는 시간, 푸르른 나뭇잎과 함께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맡겨 광합성을 함께 하는 시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지인들에게 우울의 부스러기를 살짝씩 털어보는 시간, 나에게 당신의 찬란했던 시간들을 연결하여 당신의 배터리가 닳아가는지도 모른 채 나의 상태를 걱정하고, 내가 어딘가 사라져 버릴까 봐 항상 염려로 가득했던 엄마의 시간까지.


그럼에도 배터리는 닳아갔다. 주기를 반복하여 충전과 방전을 거듭하던 나의 상태는 이제 초절전 모드로 돌입한다. 나는 애초에 성능이 좋은 배터리는 아니었던 거다. 스펙이 그렇게 높게 설계 되지를 못 했던 것이다. 그를 빠르게 인정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버티는지, 어느 온도에서 빠르게 방전되는지를 인식하고 있어야 했는데.

나는 다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강한 멘탈로 다른 사람들의 흘려하는 말에도 동요하지 않고, 척척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어느 기업의 멋진 부서원이 되어 의젓한 딸로 엄마에게 든든한 나무가 되어, 펼쳐가는 나이테의 시간 동안 그 어떤 시련도 견뎌내는 뿌리를 가지고 싶었다.


선생님의 "닳아가고 있는데 다 닳길 기다리는 배터리 같아요."라는 말에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 닳길 은연중에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타고 있을 때 크게 사고가 났으면 하는 바람, 머리가 갑자기 핑 돌며 제대로 서있기 힘들어 침대에 쓰려졌던 어느 아침, 가슴이 너무 답답하여 돌연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크게 흡-하 숨을 억지로 토해냈던 사무실의 어느 오후. 어서 빨리 방전되어 전원이 꺼졌으면 했던 감춰둔 생각들이 그 말을 들으니 맞장구를 치며 튀어나왔다.


이제는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의 손길로 돌아서있던 나를 다시 돌려 '우울'과 눈을 맞춰주어 보기로 한다. 끊임없이 부정했던 그를 이제 구성의 요소를 살피며 무엇이 그렇게 비어있는지, 어떤 곳이 약점인지 선생님들의 손과 눈과 말의 힘을 빌려 알아보려 한다. 마주하기 너무 버겁고, 손의 근육 하나하나가 떨릴 만큼 무섭지만, 지금 알지 못하고 계속 닳아버리면, 정말 전원이 꺼지는 순간이 오고, 내가 기꺼이 받아들일 것만 같다. 자기 전 손에 털어내는 늘어가는 약들을 과연 줄일 수 있을지 아직 기약은 없지만, 눈을 맞춰 보겠다는 이 마음가짐 하나만으로 나를 칭찬해 달라 감히 손을 모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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