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의 시작
29, 30대의 초입이자 20대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그 언저리에 섰다. 고운 말만 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그 생각들로 나의 고민들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시작했던 독서였다. 책의 문장은 작가의 고뇌와 편집자들의 검수가 거르고 걸러 나온 글자들임을 알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의 무게를 느껴보는 읽음이라는 행위가 나에겐 치유였다. 그렇게 책을 곁에 두며 자연스럽게 나도 글이란 것을 써보고 싶어졌다.
계속 바다 아래로 침전했던 10대를 지나, 수면을 보겠다고 발버둥 쳤던 20대 초반을 지나고,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저 깊은 바다 밑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 황망한 뭍을 본 20대 후반까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나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정리해 볼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사진을 찍고 간직하는 것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사이에서 잊히지 않도록 남겨둠의 목적이다. 머릿속에서 시간보다도 더욱 빠르게 떠오르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 중에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모으고 모아서, 서툴지만 그 생각들을 나의 마음으로 찍어서 글자로 남겨두고 싶다. 그 문장들로 나 자신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다면, 나아가 나의 글을 읽는 단 한 사람이라도 공감이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초입의 반대편 그 끝에서 미련 없이 마지막 장을 끝낼 수 있겠다.
글을 쓰겠다 다짐하니 세상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 나의 글감은 어디에 있을지, 지금의 이 감정을 글로 풀어내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세상이 문뜩 궁금해진다. 작가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더 다채롭고 아름다운 표현들이 들릴까.
물론 자신은 없다. 나는 정식으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해 배운 적이 없고, 글솜씨도 한참 형편없다.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으니 그에 비해 한없이 초라할 것이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몇 개월을 글을 올리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을 가장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건 나뿐이기에, 내 글쓰기에 대한 정답은 언제나 오로지 나 자신일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데 기죽지 않을 것이고, 그럴 이유도 없다. 지금껏 어떠한 다른 일을 시작할 때 보다도 더 당차고 단단하게 초입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