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버거운 나와 그런 당신
시계를 보니 11시 09분, 11시 18분 셔틀을 타려면 결승선을 앞둔 육상 선수처럼 숨이 나를 집어삼킬 만큼 뛰어야 한다. 머릿속에는 온통 이 셔틀을 놓치면 행해지는 일련의 귀가 단계 속 한 발짝도 떼기 버거운 내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삑. 오늘도 간신히 몸을 버스에 내던져 축 늘어진 채 집에 갈 수 있음을 알리는 셔틀 버스 탑승 소리다. 금일 근무한 시간을 세어보자면 12시간 8분.
업무가 각다분한 것을 알게 된 지는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옆을 둘러보면 척척 해내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뿐이다. 한 번에 못 알아듣는 나 자신이 항상 부끄러워 어디서도 목소리의 음량을 최소화했고, 수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돌려 다시 삼켰다. 가벼운 안부를 묻는 아침인사조차 속으로 몇 번의 검열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수준의 두뇌에 비해 너무 과분한 곳을 왔다는 생각에 매일 죄를 지은 죄수처럼 불려지고 싶지 않은 번호를 달고 있는 듯 웅크렸다. 하루종일 화장실 가는 것도 까먹으며 업무와 관련 공부를 하고, 다수의 날에 10시경 퇴근했다.
집에 오면 몸과 마음이 지친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렇게 하면서 느는 것 같지 않는 내 초라한 실력 때문에 불 꺼진 집의 소파에 앉아 가방도 풀지 못한 채로 작은 원룸을 원망 섞인 울분으로 가득 채웠다. 왜 나는 이것밖에 못할까. 이렇게 나를 만든 모든 세상에 대한 불평이었지만 실은 나에 대한 지탄이었다. 실력이 안되면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은 항상 긴장 상태였기에 자연히 식욕은 사라졌고, 뜬 눈으로 보낸 시간이 늘어난 밤 동안에는 내가 잘했을지에 대한 걱정과 오늘도 모자랐던 나에 대한 질책, 내일도 그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상영됐다.
그렇게 산 지 1년 즈음되던 겨울, 본가에 가던 지하철에서 나는 갑자기 죽음의 공포에 눈이 가려졌다. 시야가 아득하고 숨이 막히며 이러다가 쓰러질 것 같은 두려움에 잠깐 눈을 감았는데, 누가 불러 눈을 떠보니 내가 지하철 한가운데에 누워있었다. 쓰러졌다는 그 순간이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병원을 여럿 다니고 나서 정신과에서 짐작한 것은 미주 신경성 실신. 부교감과 교감 신경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찾아보니 경험자들이 많았다. 그렇게 지하철에서 몇 차례 공황이 왔던 그 시기, 내 옆에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저마다의 고난으로 바빠 보이는 회사 사람들, 힘들다고 얘기해 봐야 투정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동기들에게, 친구들에게 말수를 더욱 줄였다.
하루하루 나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 일에 부족한 사람임이 어렴풋이 보일 즈음에 리더님의 "지금 아무것도 안 했다는 얘기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어찌 보면 그리 험악한 문장도 아닌 말씀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선명해졌다.
나는 여기에 부족한 사람이고, 평생 있어도 남들만큼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진실이. 그 진실을 항상 부정하고 회피해 왔지만 결국 인정함으로써 혼란은 사라지고 되려 용기가 새어 나왔다.
그 길로 부서를 이동했다. 그러나 지금의 부서에서도 여전히 11시경 퇴근하여 셔틀을 향해 오로지 달리는 순간은 잦다. 여전히도 업무는 버겁고 힘들다. 어렸을 때 뉴스에서 보았던 회사원의 자살에 '그냥 회사를 그만 두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중얼거렸던 안일하고 경솔했던 아이는 이제 없다.
힘들고 버거운 순간에는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는다. 나 자신이 나에게 하는 부정적인 말들의 음량이 너무 커서 다른 소리는 귀까지 닿지 못하고 흩어진다. 냉혹한 진실이지만, 결국 내 귀를 열고 나를 꺼낼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여전히 일을 할 때 힘들지 않은 법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제 용퇴했던 경험을 가졌다. 나의 최선을 다하되, 내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되면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수많은 가능성을 탐색하여 알맞은 곳을 찾아 또 떠날 것이다. 버티다 부러지는 것이 다른 길로 향하는 것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몸소 알았기 때문이다. 솟구치는 교감 신경이 조금 진정된 것은 이 일을 잘하지 못해도 또 다른 방법을 내가 기어이 찾아낼 것이라는 철없는 방편을 믿고 있는 까닭이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앞으로 다른 일을 하게 되어도, 묵묵히 해낼 것이라는 철없는 용기와 지레 짐작. 나의 버겁고 무거웠던 부담감은 이렇게 1g 줄어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