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우울을 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뉴스를 틀면 도처에 나오는 사건과 사고들, 어릴 때 겪었던 죽음에 대한 경험들. 나에게도 언젠가 그가 다가올 때, 눈을 감는 그 순간 내 삶에 대해 미련과 후회는 남기지 않은 채로 그저 이로운 삶이었다고 생각하며 미련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삶을 살고자 생각해 왔다. 이 생각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데에 좋은 이정표가 되었는데,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 때나, 행동을 할 때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지, 눈을 감는 순간 후회할 일은 아닌지 한 번 더 숙고해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보통 몸에 이상이 생겨보았던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라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눈이 그중 하나였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저 남들보다 조금 안 좋은 수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재수하던 해에, 수능 한 달 전부터 시야에 이상한 지렁이 같은 것들이 눈에 떠다니기 시작했다. 한 곳을 오래 보면 이상한 물체들이 보이고, 하늘을 보면 더욱 증상이 심해졌다. 공부할 때 눈이 너무 불편하고 건조해지자 결국 수능 일주일 전에 안과에 갔었는데, 왼쪽 눈의 각막이 찢어져서 바로 레이저 시술을 진행해야 했다. 수능이 일주일 남았다고 말씀드리자, 수능이 끝나자마자 오라고 하셨다. 솔직히 그 일주일은 내 인생에 있어서 손가락 안에 드는 암울한 순간이었다.
1년간 어머니의 돈으로 재수하며, 변변치 않은 집안 사정에 공부를 해보겠다고 정말 최선을 다했었는데, 수능이 일주일 남은 이 시점에 눈이 더욱 나빠졌다니. 나는 그저 열심히 공부만 했을 뿐인데. 공부해서 어머니를 호강시켜 주겠다는 그 생각밖에 안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각막이 찢어지기 시작하면 떨어질 수 있고, 실명까지 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너무 청천벽력같이 느껴졌다. 일주일 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기엔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그 당시에는 수능에 대한 걱정에, 눈에 대한 걱정이 더해져 걷잡을 수 없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나는 아직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이 많은데. 노량진 역 아래로 지하철을 타러 갈 때면 눈을 모두 감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손잡이를 잡으며 가보기도 했다. 그러나 수능이 코앞이던 시점에 나는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했고, 나의 결론은 '눈이 보이는 만큼, 허락한 만큼만 살자'였다. 불안과 우울이라는 감정에 잡아먹혔던 때에 했던 이 생각으로 나는 보이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보이는 것에 감사하니 삶에서 더 바라거나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삶에 대한 미련이라는 끈은 이때쯤 놓아버린 것 같다. 삶에 대한 태도가 초연해지길 시작했던 시기도 이때쯤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일상에서 행복한 순간들이 산발적으로 내게 다가오면, 조금 더 살고 싶어질 것만 같아서 무섭다. 미련이라는 끈을 찾아 다시 당겨올 것만 같다. 눈을 감는 그 순간 '나 아직 조금 더 살고 싶은데' 하는 미련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것만큼 슬픈 것이 없을 것 같은데. 행복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언가를 더 원하고 바랄 때 그 희망을 앗아가는 고통만큼 괴로운 것이 없는 것은 이미 경험할 만큼 하고도 해봤다. 아마 행복한 일이 생기면 동시에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경험이 있었으리라.
이미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즐기는 것. 아직 오지 않은 불안과 걱정을 하는 대신, 온전히 지금의 일에 집중할 것. 오답과 정답을 다 아는데도 문제를 풀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꼴이 참 우습다. 행복한 일에 온전히 행복을 느끼고, 다가오지 않은 일을 쓸데없이 불안해하지 않는 어린아이도 잘 풀 것 같은 이 해답을 나는 언제쯤 쉽게 풀어낼 수 있을까. 그래도 오답 노트를 계속 쓰다 보면, 정답에 가까운 풀이를 써 내려갈 날이 오기를. 그렇게 삶의 끝에서도 미련이나 후회가 아닌 그 순간의 감정만을 오로지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