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하늘아래 의 은행나무길에서

by 강은자

흐린 하늘 아래의 은행나무길에서

오늘은 유난히 하늘이 낮게 깔린 날이다. 햇빛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공기엔 약간의 쌔콤함이 감돌았다.

어쩐지 이런 날엔 마음도 차분해지고, 발걸음도 평소보다 느려진다.

그런 흐린 하늘 아래에서 나는 오랜만에 우리 동네의 은행나무길을 지나고 있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이 계절이면, 이 길은 햇살을 머금은 금빛 터널처럼 빛난다.

화창한 날엔 햇빛이 잎 사이사이를 통과하며 바람에 반짝이고, 사람들은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느라 분주할 것인데 보이는 이 가 없다.


하지만 오늘의 은행나무길은 조금 달랐다. 잔잔하게 깔린 구름 아래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은 마치 자신들만의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역시도 자연스레 마음이 가라앉았다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 우리는 문득 이 장면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잠깐 지나치는 길 위에 차는 달리고, 창문 너머로 흐린 빛 아래의 은행나무길을 배경으로 차 속에서 한 컷을 남겼다.

햇살이 없어서 색감이 선명하게 살아나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 흐릿함 덕분에 오래 묵혀둔 기억처럼 은근한 따뜻함이 배어들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지나가는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화창한 날만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빛이 없어도, 찬란하지 않아도, 그저 그날의 공기와 기분, 함께한 사람과의 순간 때문에 충분히 특별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의 은행나무길은 눈부시진 않았지만, 그 대신 담담하고 조용한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언젠가 시간이 더 흐르고 오늘을 떠올릴 때, 나는 이 흐린 하늘 아래의 은행나무길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 바라보던 친구와,

차 안 가득 고요하게 퍼져 있던

분워기마저도 남아있을 듯하다


화창한 날의 사진이 기록이라면, 오늘의 사진은 아마도 기억이 될 것이다.

돌아보지 말고 사연 남겨 두지 말고

다음 세상을 향해 노랑은행 잎들아

흐린 날 속에 응어리 남기지 말고

어서어서 좋은 자리 찾아 날아가렴

내년에 이쁜 화창한 가을날에 만나자

하늘도 바람도 은행나무들도

흐린가을 날도 추억으로 남기고 안녕이다

2025 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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