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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Jul 10. 2023

민족의 나무 늘 푸른 소나무

민족의 나무


한국인은 어떤 나무를 가장 좋아할까? 2022년 8월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37% 이상이 소나무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라고 발표했다.  이와 같이 소나무는 역사와 문화적 가치 그리고 경관적 가치 등으로 타 어느 수목보다 월등히 우리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옛 선비들도 식물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많았다. 조선시대의 문인 강희안(姜希顔, 1417~1465)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서 소나무는 온갖 꽃과 나무 위로 혼자 솟았으니 이미 더할 것이 없다고 하였고  소나무를 화목구(花木九品) 중 1품에 놓고 노송은 별도로 3품에 놓았다.  


후에 조선조 중 후기에 살았던 유박(柳璞, 1730~1787)은 그의 화암수록(花菴隨錄)에서 소나무의 높고 뛰어난 운치는 매화, 국화, 연꽃, 대나무와 같이 1등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식물을 마치 관리들의 품계에 비유하여 늘어놓은 것도 재미있거니와 실로 선비 고유의 해학적 솜씨를 발휘한 구분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시조작가인 윤선도는 그의 대표작 오우가(五友歌)에서 소나무의 꿋꿋함과 절개를 극찬했다.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 /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 하여 아노라"


소나무를 그리고 쓰다


조선후기의  문인 김정희(1786~1856)는 소나무를 즐겨 그렸다. 그의 대표적 작품인 세한도(歲寒圖)에서 김정희는 독특한 필법으로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품성을 멋지게 그려냈다. 김정희가 유배를 떠나 곤경에 처했을 때 그린 그림으로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그 지조의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귀함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소나무는 이 그림으로 국보 제180호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어령은 세한도에서 끈끈한 인간의 절의가 풍겨 나온다고 했다.


김원일의  대표작이자 대하소설 <늘푸른 소나무>는 일제강점기하의 주인공 석주율이 시퍼런 권위와 압제하에 온갖 고난과 역경을 무릅쓰며 비폭력적으로 일제의 총칼과 맞서며 인간적인 성장을 해 나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소설에서 소나무를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야말로 조선인의 모습을 닮았다"라고 하고 "북지에서 본 백두산 미인송에서부터 탐라 한라산까지 조선 땅 어디서나 흔한 소나무야말로 조선인 몸이요 마음이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와 같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지조와 절개에 큰 방점을 두고 소나무를 평가하고 우리 나무임을 자랑했다. 사람들은 이제 소나무는 곧게 펴져 있으면 펴져있는 대로 구부러져 있으면 구부러져 있는 대로 제 자식인 양 소나무를 아끼고 사랑한다. 우리나라의 애국가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고 인쇄까지 되어 있고 보면 소나무를 싫어한 말조차 꺼내기가 궁색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로는 소나무를 뛰어넘을 나무가 없는 것이다.

 

신세한탄 


<<시경>> <정풍> 산유부소( 山有扶蘇)에서 시인은 낙락장송의 큰  소나무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한탄하고 있다.


산에는 부소나무 습지엔 연꽃 / 자두는 어디 가고 미치광이 앞에 있네 / 산에는 큰 소나무 개펄에는 말여뀌 피고/ 자충은 어디 갔나 바람둥이 앞에 있네

*산유부소:산에는 부소나무

*자도, 자충 : 전설 속의 미남


부소나무나 연꽃 그리고 소나무도 제각각 제자리에서 자태를 뽐내는데 오로지 나만이 마음에도 없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  낙락장송의 커다란 소나무에 시인은 더욱 자신의 신세를 원망했으리라.

바람에 날라갈 준비가 된 송화가루 가득한 소나무 수술(좌)과 암술(우)의 솔방울

 

수분에 1년 소나무의 깐깐함


소나무가 늘 푸르게 보이는 것은 솔잎이 2년마다 잎갈이를 하며 늘 푸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늦여름 또는 초가을에 꽃눈을 만들고 다음 해의 봄에 개화한다. 개화한 소나무 수술에서 생산되는 송가루라고 하는 포자는 바람에 날려 소나무의 암술에 안착한다. 그러나 암술은 지조와 절개를 지키려는 듯, 포자를 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포자가 암술의 난자와 합방하기 전까지는 무려 1년여를 기다려야 비로소 수정이 된다. 그 결과 소나무에는 3대의 솔방울이 같이 사는데 막 수정된 1년 차 자줏빛 솔방울, 녹색의 2년 차 성숙한 솔방을 그리고 씨가 모두 여물어 곧 씨를 떨어뜨리거나 이미 다 떨군 거므스레한 3년 차 솔방울이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대가족의 정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나무는 한 그루에 3대의 솔방울이 공존한다. 3세대의 솔방울이 같은 가지에 달려있다(좌), 시계방향 반대로 올해, 작년, 재작년에 생긴 솔방울(우)

소나무의 위기


우리나라의 소나무는 재선충에 의한 피해 및 지구 온난화 그리고 참나무류에 밀려 그 자리를 내어주는 등 소나무가 식생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어 앞으로 100년 후에는 소나무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까지는 우리나라 산림의 20%를 여전히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지만 기후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됨에 따른 화재나 가뭄 등으로 인해 소나무가 곳곳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는 온대지방 이북에서 잘 자라는 수목으로 온난화가 가속됨에 따라 소나무 전선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원인도 작용한다. 소나무를 지키기 위한 우리 모두의 절실한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가루 날리는 사월이면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포자가 그 무게마저 무거울세라 양쪽에 공기주머니 두 개씩을 달고 나무로 자라기 위한 첫 비행을 시작한다. 어디론가 흩날리며 가르는 송가루들이 백로처럼 훨훨 날아 제짝을 만나 또 한그루의 소나무가 되고 또 소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높은 가지의 소나무에 쇄백로(좌)와 새끼를 돌보고 있는 왜가리(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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