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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Mar 04. 2023

서로 다름의 미학 칡

어린 시절 이렇다 할 군것질거리가 별로 없었을 때 힘센 아이들이 산에서 칡을 케어 힘들여 먹는 것을 보고만 있던 기억이 새롭다. 그 귀하고 궁금한 맛의 칡을 나까지 감히 먹어 볼 기회가 없으려니 한 포기심리도 작용했지만 한입 달라고 할 용기조차 없었다. 칡은 흔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지금의 산삼만큼이나 먹기 힘든 경외의 뿌리였다. 사실, 산에서 어린아이가 산에서 칡을 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칡과 등나무는 왜 서로 반대방향으로 오를까


칡은 곧잘 등나무와 같이 언급되기도 한다. 둘 다 덩굴식물인데 칡은 오른쪽으로 나무를 감아 돌며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나무를 감아 올라가니 여기서 갈등(葛藤)이라는 말도 나왔음을 안다. 하나는 오른쪽으로 돌고 또 다른 하나는 왼쪽으로 도니 서로 만나면 부딪힐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문 같지만 근본적인 칡과 등나무의 줄기운동이 왜 서로 다른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우주의 신비를 캐는 것도 어렵거니와 식물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것조차 우주적인 현상이니까. 단순한 자연발생적일까? 아니면 어떠한 합목적성 혹은 각자의 운동방향에 어떠한 유리한 점이 있어서일까? 이러한 각기 다른 운동의 요인은 유전적인 이유, 세포벽 형성의 방향성, 호르몬적 특성, 물리적인 스트레스 요인 등 다양한 원인이 기여한다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여 한번 정해진 방향은 결코 뒤바뀌지 않는다. 메꽃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돌며 줄기가 올라간다. 메꽃의 줄기를 방향을 틀어 돌려놓으면 다시 원래의 방향으로 자세를 잡는다. 등나무와 칡의 줄기의 방향은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고 서로 다름의 현상이다.


우로 감는 칡과 좌로 감는 등나무 (좌), 위로 피는 칡꽃과 아래로 피는 등나무 꽃(우)


고정 출연자


쑥과 뽕나무와 같이 칡도 시경의 고정 출연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숲 속에는 늘 칡이 덩굴을 지어 수목을 휘감고 오르고 있다.


<<시경>> <주남> 葛覃(갈담) 은 칡넝쿨 우거지고 꾀꼬리 우는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이 고대로 느껴진다.


칡넝쿨 뻗어 나 계곡 가득하고 / 무성한 잎새 위로 꾀꼬리 날아와 / 나무숲에 앉아 꾀꼴꾀꼴 노래하네

칡넝쿨 뻗어 나 계곡 가득하고 / 무성한 잎새 칡넝쿨을 걷어 와서 / 굵고 가는 베를 짜 옷 해 입어 기분 좋네

스승께 고하고 친정집 다녀오리 / 속옷 저고리 빨아 입고 / 빨랫감 다 해치우고 부모 뵈러 친정가리

*갈담: 칡넝쿨


실로 아름다운 정경이다. 글자 하나하나에 감흥할 만한 '칡넝쿨' '꾀꼴꾀꼴' '베' '친정집' '빨래'와 같은 단어에서 삶에의 적응과 자연과의 일체감이  느껴진다.  옛날에는 칡의 용도가 구황식물이나 베를 짜서 옷감으로 사용하는 등 실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식물이었다.

칡으로 신을 만들어 신는 모습은 시경 몇 편에 아래와 같이 전해온다.


<<시경>> <魏風위풍> 葛屨(갈구)의 한 구절 '엉성한 칡넝쿨신(葛屨)으로 서리를 잘도 밟네'

*갈구:칡넝쿨 신


<<시경>> <제풍> 南山 의 한 구절 '칡넝쿨로 삼은 신(葛屨)도 제짝이 있고'


한편, 칡을 소재로 한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시가 <<시경>> <왕풍> 채갈(采葛)에 전한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칡을 캡니다 / 하루만 그대를 보지 못해도 / 석 달을 본 듯이 그립습니다


칡을 한 광주리 캔들 아니 금은보화가 한 포대 생긴 들 무슨 소용 있으랴. 사랑과 교환할 수 있는 재물이 있을 쏜가, 사랑과 비견할 묘약이 있을 쏜가. 사랑하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은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듯하고 막상 사랑하는 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오는 시간일진 댄 참으로 인생은 야박하고 얄궂다. 시경에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빼면 책이 홀쭉해져 도저히 한 책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은 고귀하고 우리 인간을 힘차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식량이다.


이밖에도 <<시경>> <왕풍> 葛藟(갈류:칡넝쿨), <단풍>葛生(갈생:칡덩굴이 자람) 등에 마치 <시경>을 칡덩굴로 칭칭 감듯 곳곳에 나오는 것을 보면 칡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친숙한 식물이었나를 가히 짐작케 한다.


맛난 칡국수 


필자는 오래전에 춘천의 강촌에서 칡국수를 작은아버지께서 사주어 처음 먹어 본 생각이 뚜렷하다. 검은색에 가까운 칡의 색감에 매우 신기했고 맛 또한 기가 막혔다. 조상들도 이러한 칡을 식용으로도 이용했다. 세종 18년에는 일본으로부터 칡을 이용해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워 백성에게 가르쳤다. 성종 때는 칡의 식량화 방안 연구와 더불어 칡가루와 전분이 함유된 국수를 만드는 법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칡국수의 제조법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진한 국물과 거므스레한 칡국수, 여기에 감자전을 겸한 막걸리 한잔이 곁든다면 이보다 더 한 진수성찬과 술상이 따로 있을까?

칡의 열매를 보면 칡이 콩과식물임을 알수있다(좌). 칡부엉이는 드렁칡이 얽혀 칡부엉이의 몸색과 어울려 십사리 발견하기 어려워 붙여진 이름이다(우)

서로 다른 아름다움 


사람들은 바로 이 칡과 등나무의 꽃을 보면 도대체 어느 꽃이 더 아름다운지 혼란스러워 갈등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절벽에서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등나무의 꽃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칡의 곱게 위로 내달리는 꽃을 보면 아찔하도록 아름답다. 칡과 등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하나는 위로 향하여 피고 다른 하나는 아래도 내달리 듯 피어난다. 이래저래 갈등이지만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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