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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Jun 26. 2023

복사꽃 요염한 복숭아나무

노심초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일제강점기가 한창인 1927-1929년, 홍난파가 작곡하고 이원수가 작사한 고향의 봄을 듣노라면 아득한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라 잃은 슬픔을 복숭아꽃에게라도 하소연해 보고 싶었을까?


린 시절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장사가 끝나면 똬리에  얹은 대야에 복숭아 몇 개를 사 오시곤 했다. 어머니는 체구가 왜소하고 키도 작은 편이었다. 아마도 평생 머리에 이고 다니셨던 대야의 중력 탓도 있었으리라. 어린 시절 복숭아는 어쩌다 한번 먹어보는 달콤하고 귀한 과일이었다.


요즈음은 먹고사는 문제는 둘째여서 사람들은 복숭아 맛을 기대하기보다는 화사한 복숭아꽃에 더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복숭아꽃이 지기라도 할까 노심초사하여 "바람아 불지 마라 / 복사꽃 떨어진다"라고 외쳐보는 것이다. 그러나 복사꽃이 피고 지는 건 이미 사람들의 희망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자연의 순리대로 꽃은 피고 지는 것뿐이니 진실로 사람이 아쉬워하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욕심뿐인 것이리라. 조선말 실학자이자 항일독립투사 이기(李沂)는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필 적엔 비가 오고 질 때는 바람 부니 / 복사꽃 자 한들 몇 날이나 붉은 손가

이 모두 복사꽃의 일신상의 일이거니 / 바람이 무슨 죄며 비가 무슨 공이 있나

(우리 한시 삼백수. 정민)


화려한 봄의 축제


무릉도원(武陵桃源). 복숭아꽃이 만연한 그야말로 유토피아적인 세상이다. 어렸을 때 신기한 마음을 품고 마치 미끄럼을 타듯 신나게 읽어 내려갔던 서유기에서의 손오공과 복숭아 이야기는 어린 시절 벽장 속에 귀중한 물건을 감추어 놓았듯 마음의 한 구석에 아직까지 남아있다.


<<시경>> <주남> 도요(桃夭)는 인생의 긴 여정중 가장 즐겁고 기쁜 날을 묘사한 대목일 것이다. 기쁨은 여럿이 모여 나눌 때 증폭되어 서로에게 감염되니 즐길 때 더욱 흠뻑 즐겨야 한다.


복숭아 가지 어리고 예쁘구나 붉은 꽃 활짝 피었네 / 시집가네 우리 아씨 온 집안 화목하네

복숭아 가지 어리고 예쁘구나 복숭아도 주렁주렁 / 시집가네 우리 아씨 온 집안 화목하네

복숭아 가지 어리고 예쁘구나 그 잎도 푸릇푸릇 / 시집가네 우리 아씨 온 집안 화목하네

*도요:복숭아 가지


화사하고 아름다운 복숭아꽃이 피어있는 동산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이다. 복숭아꽃이 피어있고 싱싱한 꽃잎이 피어있는 것으로 보아 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열매들이 토실토실 하니 이미 계절은 가을로 넘어가 시집간 아씨가 아이도 많이 나아 잘 살기를 기원하는 뜻도 있을 것이다.


도요는 시경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시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청춘남녀의 한창 좋은 시절에 백년가약을 맺고 아이들을 많이 낳아 기르는 것은 최고의 미덕과 행복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인구절벽의 함정에 빠져 사회적으로나 국가경쟁력으로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옛날에는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는 것은 가정의 행복뿐만 아니라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가에 있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복숭아꽃이 활짝 핀 화창한 봄날의 시집가는 아씨의 연지 찍고 곤지 찍은 고운 뺨은 복숭아꽃에 뒤지지 않으리라.


해마다 4월 이면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복사꽃이 피어난다.


일장춘몽


도화연기(桃花源記)는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작품이다. 도연명은 중국 동진에서 송나라시대까지 활약한 시인이다. 당시 정세가 어지러운 것을 안 그는 일찌감치 벼슬을 치우고 안빈낙도의 삶을 자처했다. 그는 어지럽고 살기 힘든 세상을 벗어나고자 상상 속의 세계를 그렸다.


산문으로 쓰인 내용은 이렇다. 진나라 사람 고기잡이가 우연히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복숭아 꽃잎이 흩날리는 복숭아밭에 다다랐다. 복숭아밭이 다했을 때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와 산으로 통하는 동굴이 있었고 어부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에는 그들의 선조가 진나라 때 난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들로 서로를 위하며 즐겁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친절하게 대접을 받고 난 후에 어부가 돌아와 고을의 수령에게 이 사실을 고했고 수령은 어부와 같이 이 동굴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헛수고였다. 유토피아적인 공간은 세상에 더 이상 없었다. 한순간의 일장춘몽이었던가. 무릉도원()이라는 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 나오는 말로, ‘이상향’, ‘별천지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었다.


시경 도요(桃夭)의 도(桃)는 복숭아이고 요(夭)는 젊고 아름다우며 화기가 있는 모양을 말한다. 그래서 도요는 복숭아꽃 만발한 결혼하는 날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 무릉도원이 어디 있으며 꽃은 피면 또 지는 것이니 도요 같은 날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복사꽃은 해마다 4월 이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럴수록 찰나의 시간을 더욱 만끽해 보는 것이다.

아씨 시집가는 날 복숭아나무도 기뻐하며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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