楡. 느릅나무를 말하고 유로 읽는다. 느릅나무의 가까운 식구에는 참느릅나무, 왕느릅나무, 미국느릅나무, 시무나무, 비술나무 등이 있다. 한결같이 좌우의 균형이 맞지 않는 짱구잎을 가지고 있는데 이 나무들을 구별하려면 어느 정도 수련이 필요하다.
서울 봉산 정상부근의 왕느릅나무를 알아보는데 필자가 미련한 탓도 작용했겠지만 3년이 걸렸다. 처음엔 느릅나무로 알았고 그다음은 비술나무인가 했고 다시 왕느릅나무로 결론지었다. 느릅나무는 3월 이면 벌써 앙증맞은 꽃이 잎보다 먼저 나와 나뭇가지에 착 달라붙어 꽃을 피운다.
느릅나무 꽃은 꽃잎이 별도로 없어 속을 훤히 다 내보이는 수술 4개와 암술 2개로 이루어진 작은 꽃이 나뭇가지에 모여 화사하게 피어난다. 얼핏 뒤숭숭해 보이고 꽃 같지 않아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면 다리가 휘청거리도록 꽃에서 눈을 떼기 어려운 아름다운 꽃이다. 다리가 휘청거리는 이유는 느릅나무 가지가 비교적 커서 키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느릅나무속인 참느릅나무는 9월에 꽃을 피운다. 참느릅나무는 흥미롭게도 두 종류의 꽃을 피운다. 암술과 수술로 이루어진 꽃과 수술로만 이루어진 꽃이 같이 피어 느릅나무와는 구별되며 이것이 관찰의 키 포인트다. 우리가 흔히 보는 느릅나무는 사실 참느릅나무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참느릅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느릅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나무가 대부분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주고 있다.
추위가 채 가시기 전인 3월에 꽃을 피우는 비술나무는 꽃이 마치 닭의 벼슬과 같이 흡사한데 함경도에서 닭의 벼슬을 비술이라고 하여 비술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역시 고혹적인 꽃을 피운다.
Ⅰ비행접시Ⅰ
느릅나무가 꽃잎이 없는 이유는 느릅나무과는 바람에 수분을 의존하는 풍매화이기 때문이다. 풍매화는 곤충이나 새들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 꽃잎을 만드는데 굳이 에너지를 투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느릅나무과의 열매는 열매의 가운데 부분에 씨앗이 위치하고 주위에 원반 모양의 날개를 달아 비행접시처럼 바람을 타고 멀리 이동하는데 용이하다. 고대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날개 달린 모자와 신발을 신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우주의 재판관에 인도하는 신의 사자 헤르메스를 느릅나무의 열매가 바람을 타고 그의 곁을 동행했다고 한다.
느릅나무과의 열매는 엽전 같이 생겨 동전이 열리는 나무라고 해서 유전(楡錢)이나 유협전(楡莢錢)이라고도 하였다. 비술나무 씨앗은 유수전(楡樹錢)이라 불리었다. 참나무의 도토리와 같이 느릅나무의 껍질과 잎은 백성들이 보리고개를 넘는데 구황식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굶주린 백성들은 느릅나무껍질을 맷돌에 갈아 죽을 쑤어 먹었다. 느릅나무과의 씨앗은 새들에게 고마운 먹잇감이다.
느릅나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있는 나무로 깊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동서의 작가들은 느릅나무 의 상징을 이용하여 작품을 쓰기도 했다. 미국의 저명한 극작가 유지 오닐(Eugene G. O'Neill)은 그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에서 느릅나무가 가지고 있는욕망과 사랑 그리고 열정과 환희의 상징을 표현했다.
『애비:(부드럽게)... 태양은 강하고 뜨겁지 않아? 땅속을 파고들듯이 불타고 있잖아. 바로 자연의 힘이야. 사물을 자라게 하지. 점점 더 크게, 내속에서 자라며, 그래서 마침내 그것과 하나가 되어, 그게 네 것이 되지. 하지만 그것이 너를 소유해서 점점 더 크게 자라게 해. 나무처럼. 저 느릅나무처럼......... 』
이응준은 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에서 가정에서의 불협화음을 방황 끝에 극복하고 희망찬 새로운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는 장면에 느릅나무를 등장시켰다.
『나는 '아름다운 길'에서 내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내 느릅나무를 보기로 했다. 키 작은 나의 느릅나무 위로 하얀, 하얀 하늘의 노래들이 담요처럼 덮이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마음에 몇 글자를 그린 후, '세상의 길 '로 다시 뛰어내렸다 』
Ⅰ환희Ⅰ
<<시경>> <진풍(陳風)> 東門之枌(동문지분)은느릅나무의 상징인 즐겁게 노는 환희의 가무를 즐기는 장면을 노래했다.
동문의 느릅나무 완구의 상수리나무 / 자중 씨의 따님들이 그 아래에 춤을 추네
좋은 날을 가려서 남쪽들에 모여드네 / 삼베길쌈 버려두고 너울너울 춤을 추네
좋은 날을 가려서 무리 지어 모여드네 / 그대 보길 금규화처럼 여기나니 나에게 초피 한 줌 주네
*동문지분:동문의 느릅나무
진(陳)나라는 무당과 가무를 즐기는 풍속이 있어 이러한 풍속을 따르다 보니 동문지분과 같은 노래가 유행하였고 후에 이를 경계하고 바른 것을 권하는 시로서도 인용되었다. 시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배경이 어찌 되었든 금규화의 얼굴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에게 흰구름과 같은 하얀 산초를 한 아름 받았으니 누군들 가슴 떨리지 않을 수 있으랴.
Ⅰ 느릅나무를 찾아서 Ⅰ
계절에 맞는 나무의 꽃을 감상하는 일은 부지런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아무리 부지런을 떤들 나무를 찾기 힘들어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부지런함의 노력을 다 하지 못한 결과다. 나는 3월에 피는 느릅나무의 꽃이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때로는 지인에게 묻기도 하며, 여기저기 수소문 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대부분은 9월에 피는 참느릅나무여서 잘못된 정보도 많아 혼란이 가중되었다. 가까스로 수소문하여 일산 호수공원에 한 그루 있는 느릅나무를 찾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꽃이 자란 후였다. 적절한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시기를 놓친 후 서울식물원 야외 뜰에 수많은 느릅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허망했다.
이제 참느릅나무의 꽃이 9월에 필 것이다. 참느릅나무에 피는 두 종류의 꽃을 보는 기대로 9월을 기다린다. 두 종류의 꽃을 잘 구분해서 볼 수 있을까? 지레 겁이 난다. 초심자의 희망이 수포로 돌아갈까 선지급의 걱정을 해 보는 것이다. 그래도 느릅나무에 관한 한 나에게도 열정이 있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