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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Jul 17. 2023

아름다움이 지나쳐 슬픈 능소화


질투


"구중궁 담벼락이 하도 높아서 / 소화는 까치발로 서성였지요 /오로지 한 남자를 사모하다가 / 상사병에 시름시름 죽어간 여인"


가수 이애란이 부 능소화의 가사 일부이다. 색소폰 소리의 애닮고도 구슬픈 전주곡은 가사이상 슬프고 애처롭게 울려온다. 능소화의 아름다움에 사람들이 질투하였을까? 능소화는 대중이 즐기는 가요와 그리고 이야기에서 모두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비 오는 날 능소화는 꽃잎이 한개 두개 떨어지지 않고 통꽃으로 울며 땅바닥에 나뒹근다.


인생은 비교급이런가. 인생에 달관하지 않는 이상 곁에 너무 잘난 사람이 있으면 내가 상처를 입고 또 내가 너무 잘나도 상대방이 상처를 입는다. 기쁜 일이 있어도 적당히 표현하고 언짢은 일이 있어도 크게 불평할 일이 아니다. 내가 기쁠때 슬픈 사람이 있고 내가 슬플때 나보다 더 슬픈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능소화가 이리도 아름다운 자태를 독야청청 뽐내니 상처받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빗물에 더욱 슬퍼보이는 능소화(좌). 통꽃으로 뒹구는 능소화(중).딱다구리의 발톱 같은 능소화의 강력한 흡반(우)

능소화가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조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능소화의 무성한 줄기와 잎을 헤치고 안을 들여다보면 줄기의 마디마디에 흡반이라고 하는 흡착뿌리가 딱다구리의 날카로운 발톱이 나무를 움켜쥐듯, 소리없이 능소화의 줄기를 지지하고 있다. 능소화의 흡반은 햇빛조차 보지 못한채 어둠속에서 묵묵히 봉사한다. 이러한 부착근은 미세한 잔털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 부착면과의 표면적을 넓히고 마찰계수를 증가시켜 보다 더 유리하게 줄기를 지지하는것으로 알려졌다. 능소화는 수많은 흡반들의 지지를 받아 목청껏 하늘을 향해 붉은 자태를 뽐낸다


 지나친 아름다움 Ⅰ


<<시경>> <소아>  笤之華(초지화) 에서는 능소화의 아름다움과 신선한 잎에 감복한 나머지 자기자신의 신세를 오히려 한탄하고 있다. 능소화가 아름다울수록 내 마음은 더욱 시리고 아프다. 아예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한탄마저 들려온다.


능소화 예쁜 꽃이 노랗게 피어나도 / 내 마음에 서린 시름 쓰리고 아프구나 / 능소화 꽃잎이여 싱그러운 잎새여 / 내 이럴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 않을 것을

*초지화:능소화


해마다 봄이 되면 곳곳에 꽃이 피어 진수성찬의 색깔을 오월까지 늘어놓고 유월이면 푸르름으로 변한다. 꽃을 보며 희희낙락하는 재미가 다할 때쯤 구원투수와도 같이 등장하는 능소화는 목마른 구도자에 홀연히 나타나는 오아시스다. 능소화는 이제 적어도 한 여름에 회화나무가 꽃을 피울 때까지는 찌고 더운 여름동안 꽃을 찾는 나비와 벌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온통 독차지할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지적한 작품이다. 소설속의 영빈은 현금의 2층집으로 베란다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능소화를  "온통 노을 빛깔의 꽃" 으로 표현하고 "지나치게 대담하고, 눈부시게 요염하여" 오히려 슬퍼지려 한다고 하였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지독한 아름다움에 오히려 슬픔으로 다가오는 역설. 소설에서 영빈은 현금에 대한 애정은 학창시절부터 시작되었고 현금의 메롱하며 내미는 혀는 "능소화가 무수한 분홍빛 혀가 되어"라고 하여 농익은 능소화의 자태를 표현하였다.


 능소화는 아치를 세우는 건축가 Ⅰ   


3년 전. 나는 일산의 한 음식점에서 냉면을 먹은 후 식당 앞에 피어있는 능소화를 우연히 보았다.  암술을 둘러싸고 있는 네개의 수술은 알함브라 궁전의 사라센건축 양식처럼 꽃잎에 이중으로 된 멋진 아치를 그리고 있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여타의 식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암술과 수술이 꽃잎의 벽에 바싹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럴까 ? 능소화는 벌새나 벌 종류에 의한 수분이 이루어지는 충매화다. 벌 등은 암술과 수술의 꽃이 중앙에 위치하는 것 보다 꽃잎에 붙어 있을 때 공간이 더 확보되므로 수분매개자로서의 역할을 하기가 용이하다고 한다. 한국에는 벌새가 없지만 미국 등에서는 벌새의 활동이 수술과 암술의 위치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과학이 식물의 비밀을 샅샅이 뒤져 다 밝힐 수는 없다. 예측을 불허하는 생태계의 신비를 탐험하고 연구하는 작업은 머나먼 우주의 신비를 알고자 하는 노력과 즐거움에 비등한다.


알함브라궁전의 아치(좌). 능소화의 아치형 수술. 가운데 직선으로 올라간 암술(중). 꽃잎 벽면에 붙은 수술이 보인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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