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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Apr 21. 2023

부모님 생각나는 가래나무

고혹적인 가래나무 암꽃

Ⅰ가래나무를 보고 부모님을 생각하다


楸(추)와 梓(재)는 모두 가래나무를 가리키는 한자다.  가래나무는 추자(楸子)나무 혹은 추목(楸木) 등으로도 불린다. 옛 부모들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담장 밑에 심어서 자손들이 누에를 치거나 가구를 만들 때 사용하게 했다. 그래서 뽕나무의 상(桑), 가래나무의 재(梓)를 합하면 상재(桑梓) 곧, 선조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고향 또는 고향에 계신 연로한 어버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추행(楸行)은 조상의 산소에 성묘하러 감의 뜻이고, 이는 후손들이 조상의 무덤에 가래나무를 심은 데서 유래한다.


이와같이 가래나무는 예부터 뽕나무와 더불어 부모를 공경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일성록에 정조는 뽕나무나 가래나무만 보아도 반드시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시의 제목으로 삼기도 했다. 또, 여러 문헌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조상이 심었던 것만큼 공경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가래나무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심어 놓은 것이니 자식으로서 이 나무들을 보면 고마운 부모님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시경>> <소아> 소반(小弁)의 부모님을 공경하며 추모하는 장면으로 역시 가래나무가 등장한다.


가래나무도 뽕나무도 보살피고 공경하니 / 아버님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 마음에 그리는 어머님이네  

*소반:갈가마귀


경국지색(傾國之色)은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하다 나라를 망친다라는 옛 주나라의 유왕과 포사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전하는 말이다. 이 시는 그 유왕의 태자인 의구(宜臼)가 계모인 포사 등의 등살에 폐위된 후 한탄을 하며 지운 시로 부모님에 대한 공경함과 그리움을 노래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이 아무리 삭막하게 변해도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


고혹적인 암꽃 


봄이면 가래나무도 본격적으로 싹을 피울 준비를 한다. 가래나무의 가지의 끝에서 옹기종기 모여 달리는 겨울눈은 흥부 자식들이 이불 하나에 구멍을 뚫어 목만 내놓아 옹기종기 모여있는 듯 애틋하다. 가래나무는 가래나무과의 대표식물로서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이른 4월 이면 가래나뭇가지에는 수꽃이 고개를 땅으로 떨군다. 수꽃은 꽃대가 연하여 늘어지는 특징이 있어 바람에 화분을 날리게 하여 수분을 쉽게 한다.  


암꽃은 이삭처럼 위로 피는데 끝이 두 갈래로 벌어진 진한 분홍색의 꽃은 범접할수 없는 깊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암꽃은 수꽃이 피고 난 후 며칠의 간격을 두고 뒤에 피어난다. 이렇게 암수가 피어나는 시기를 달리하는것은 자가수분(자기의 수꽃 꽃가루로 수분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자가수분은 병충해의 방지나 나무를 튼튼히 하는데 있어 유리하지 못하다. 생물의 다양성이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듯이 수목도 다른 나무와의 수분이 성장하는데 유리하다.


독자 여러분도 4월 이면 반드시 가래나무의 암꽃을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두 팔을 벌 신비스럽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가래나무의 암꽃로마 바티칸의 프레스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져 있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는 감동에 비등한다. 물론, 목이 좀 아프겠지만 말이다. 가래나무의 암꽃은 풍성한 잎과의 사이에서 살며시 위로 피어나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창경궁의 홍화문에 들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끝까지 간 후에 오른쪽으로 난 길로 조금 가면 감상하기 좋은 큰 가래나무가 있다.


가래나무의 수꽃과 암꽃이 위치와 방향을 달리하여 피어있다(좌), 시계방향으로 가래나무 겨울눈, 수꽃, 암꽃, 열매


딱딱한 씨앗에서 발아하는 비결은 ?


가래나무의 열매와 씨앗도 볼거리다. 가래나무의 씨는 양손에 두 알 정도를 움켜쥐고 손바닥 안에서 비비면 혈액순환이 좋아진다고 하는 단단한 씨다. 그런데 가래나무는 이렇게 딱딱한 씨를 어떻게 뚫고 발아하여 성장할까?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두껍고 딱딱한 껍질을 가진 식물의 씨앗은 발아시기가 되면 자기의 외투를 녹이는 호르몬이 작용하여 딱딱한 껍질을 녹인다. 아뿔싸 ! 식물의 재주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일찍이 맹자는 사람이 가래나무와 오동나무를 키울 줄 잘 아는 것만큼 자기의 몸과 마음을 수양할 것을 권고했다. 해마다 봄이면 한강변 난지생태습지에 가래나무가 있어 잎을 돋고 꽃을 피운다. 가래나무를 바라보며 맹자의 말씀도 되새겨 본다.


저 멀리 남쪽나라 영천의 호국원에서 영면하시는 부모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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