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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Jan 13. 2023

금빛 가지 버드나무

3월. 밀려오는 강가의 부스러지는 물결이 햇빛에 반사된다. 갯버들은 백색의 영롱한 물결을 배경으로 찬란하게 피어난다. 호숫가의 능수버들은 새 가지에 푸른색을 더하고 겨울눈은 꽃을 피울 태세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한다. 능수버들의 냇가에 축축 늘어지는 폭포수의 물줄기 같은 푸른 가지에 마음이 후련하다. 한가로이 풍류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버드나무만 한 친구도 없을 것이다. 글 꽤나 읽는 선비도 버드나무 밑에서는 글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발을 담갔다. 월산()대군은 버드나무에 취하여 "강가의 버드나무는 또다시 금빛 가지를 틔우네"라며 흐느러지는 봄의 기운을 노래했다.


버드나무 아래에서 세상을 읽다


<<시경>> <진풍> 車鄰(거린)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유유자적 버드나무를 벗 삼아 세상을 희롱해 보는 시다. 


언덕에는 뽕나무 습지엔 버드나무 / 우리 님을 만났으니 함께 앉아 젓대 부네 / 지금 즐기지 않을쏘냐 한 번 가면 그만인 것을 

*거린:수레소리 


나라가 항상 평안하고 백성은 언제나 배가 부르는 것도 아니다. 화복(福)은 쳇바퀴처럼 도는 것이니 평안하고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겨두는 것이 상책이다.


<<시경>><소아> 菀栁(울유) 편은 축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고 싶으나 나라 걱정이 앞서 한탄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다. 이 시는 왕을 섬기고자 해도 왕이 권위를 앞세우고 신하가 두려워하니 선 듯 나서지를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화창한 봄날 버드나무 가지가 흐느러지는 그늘 아래 누워보고 싶은 심정은 모두 같으리라. 그렇지만 마음이 불편하면 몸인들 어찌 편할 것인가.


울창한 저 버드나무 /  누워서 쉬고 싶어라 / 상제의 꾸짖음이 두려우니 / 가까이 가기도 어렵구나 / 나에게 큰 임무 맡긴다지만 / 나중에는 내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울유: 무성한 버드나무


세상살이가 항상 평화롭고 집안이 늘 평안한 것도 아니다. 우리 인생의 길은 어치피 희로애락이 혼합된 패키지 상품이다. 그렇게 계약하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언제 까지나 행복할 수 없고 항상 불행할 일도 아니다.  버드나무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불 때도 언제나 주위의 풍경과 어울리 듯 우리에게도 그러한 삶의 의연함이 필요하다.


<<시경>> <진풍> 東門之楊(동문지양)은 녹음이 우거진 버드나무의 충만한 생명력과 자연의 아름다움에도 님이 오지 않아 허전한 마음을 노래했다.


동문의 버드나무 잎새 무성하구나 / 저물녘에 만나자고 약속했더니 / 샛별만 반짝이고 있네

동문의 버드나무 그 잎새 무성하다 / 저물녘에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 샛별만 반작이고 있네

*동문지양:동문의 버드나무


「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남진의 <님과 함께> 라는 노래의 가사다. 비록 가난하고 초간 단칸방이라도 님과 함께라면 언제나 행복할 것이리라. 버드나무 아래의 여인이 세상에서 제일 듣고 싶은 소리는 님의 발자욱 소리다.


각양각색 버드나무


버드나무의 종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버드나무과 버드나무속에는 버드나무, 능수버들, 수양버들, 용버들, 왕버들, 호랑버들, 선버들, 갯버들, 키버들, 삼색버들 등 국내에 약 48종이 있다고 한다. 버드나무의 늘어지는 가지는 다른 수목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버드나무의 가느다란 긴 가지의 수형 자체가 다른 수목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지의 뻗은 형태에 따라서 바람을 타고 천태만상의 모습을 연출하는 버드나무의 자태를 따라갈 나무가  없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의 미의 극치는 다른 석탑과는 완전히 다른 이형석탑(塔)으로서 정제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버드나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모습을 이미 취하고 있는 것이다.


갯버들과 키버들


이른 봄 추운 겨울의 삭풍을 해치고 갯버들과 키버들은 활짝 피어난다. 영롱한 물결위에 춤추듯 총총한 갯버들의 꽃술들은 현란한 마스게임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옛 기록에 정승들은 갯버들을 연약한 상징으로 삼아 걸핏하면 자기는 갯버들과 같이 연약하고 점점 쇠어가니 사직을 청하곤 하였다.  그러나 세찬 비바람과 가지의 꽃눈을 뒤덮은 얼음을 뚫고 기어이 꽃을 피우는 갯버들에서는 강인한 생명력이 절로 느껴진다.

강변에 눈부시게 갓 피어난 갯버들(좌)과 키버들(우)


능수버들과 수양버들


늘어지기를 따진다고 하면 단연 능수버들일 것이다. 물가에  황금빛 줄기를 축축 늘어뜨리는 것은 능수버들의 전매특허다. 옛 문인들이 이러한 능수버들의 멋진 풍경을 그냥 놓아둘 리 없었다. 버드나무 그늘 아래 술 한잔 기울이고 풍류를 즐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먹 꽤나 가는 문인은 멋진 그림도 그렸고, 글 좀 읽는 선비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시를 읊었다.


수양버들도 능수버들과 같이 축축 늘어지기는 마찬가지다.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은 나무의 껍질이나 잎 그리고 꽃 등 외형적인 면에서 너무나도 유사하여 판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지, 겨울에 새 가지의 색이 푸른색을 띠면 능수버들이요 가지에 붉은 기운이 돌면 수양버들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인간의 눈이 간사해서 푸른 것도 붉은 기운이 도는 푸른색인가 의심스럽고, 또 붉은 가지인가 했더니 푸른색이 섞여 있는 듯하여 애매하기 짝이 없다. 


필자도 이 두 나무를 구분해 보자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확인해 보았으나 나무에 '나 수양버들이요'라고 이름표를 붙인 나무 외에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밖에 능수와 수양을 구분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지만 순수하게 나무를 즐기려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심히 고약한 분류요 할 일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수양버들보다는 능수버들의 식재가 우세하여 대부분은 능수버들의 이름표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창경궁 향원정 연못에 금빛 줄기를 드리우고 있는 것은 능수버들이다. 경복궁 경회루의 능수버들도 북악산을 바라보며 연못에 제 모습을 투영한다. 서울 올림픽공원에는 반가운 수양버들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반가운 이유는 수양버들임을 확신 할 수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수양버들을 더 좋아한다. 수양버들의 절제된 가지 흘림은 품위를 더한다.

황금색 능수버들 가지(좌)와 지면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가지를 내리는 수영버들(우)이 품격 있어 보인다.

용버들 왕버들 호랑버들 선버들 삼색버들


용버들은 가지가 용이 몸을 비틀며 하늘로 올라가는 형세를 닮았다. 버드나무속 중에서도 매우 특이하고 흥미로운 현상이다. 왕버들은 수고가 지름 1m, 수고 20m에 이르고 잎이 여타의 버드나무류보다 크고 잎이 넓다. 호랑버들의 겨울눈은 마치 호랑이의 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버들은 잎에서 선점이 있고 톱니모양의 줄기를 빙 둘러있는 탁엽의 모습이 볼거리다. 갯버들과 키버들은 그 화려한 꽃으로 봄을 알려준다. 두 나무는 키가 2-3m 정도 자라므로 꽃을 감상하기에는 단연 최고다. 삼색버들은 세 가지의 색이 있어 삼색버들이라고 한다.

좌상부터 시계방향:선버들, 왕버들, 키버들, 용버들, 삼색버들

버드나무에 얽힌 시를 음미하며 유희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몇 종의 서로 다른 버드나무류를 찾아보며 소일하는 맛은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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