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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Jul 21. 2023

값 높은 영혼 찔레

 아쉬움


따뜻한 봄날, 봉산의 7부 능선 굽은 길을 돌아 하얀 덤불숲에서 발이 멈추어진 건 4년 전의 일이다. 덤불은 백지장 꽃잎에 노란 꽃밥을 단 수술이 밤하늘의 은하수같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코를 부드럽게 스쳐가는 대중가요의 가사와도 같은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는 나로서는 그 향기를 입력하여 언어로 출력하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표현할 길 없는 달콤한 내음이었다.


혹시, 찔레꽃일까?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 찔레꽃을 확신할 수 없는 나는 다소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 찔레의 달짝지근한 찔레순이라도 따 먹어 보았다면  뭉클한 옛 추억을 떠 올렸을 텐데 하는 탄식이나마 가까스로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린 시절에  찔레를 본 기억이 없는 아쉬움은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다. 백난아가 부르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의 노래를 들으며 고향의 깊은 향수에라도 젖어보았으면 하는 희망인 것이다.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순백의 꽃잎이 만발해 있다.

 값 높은 영혼  


1937년 3월 31일부터 그해 10월 3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여류작가 김말봉의 장편 연애소설 <찔레꽃> 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그녀를 주목하는 작가의 반열 위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작품에서 가난한 주인공 안정순은 대부호 은행장 조만호의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정순은 조만호의 돈의 유혹, 그의 아들 경구의 그녀에 대한 구혼, 정순이 사랑하는 민수를 두고 벌이는 조만호의 딸 경애와의 갈등 등 온갖 사건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녀만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낸다. 경애는 정순을 바라볼 때 그녀를 찔레꽃의 품격에 비유했다.


"그러나 찔레꽃 앞에 와서 비로소 정순의 값 높은 영혼을 보는 듯하였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순수하게 피어나는 찔레꽃은 가시투성이의 가지 위에 값 높은 영혼인양 피어나는 것이었다.  

가시를 품고 있는 찔레의 겨울눈. 가시는 식물의 표피가 변하여 생긴다(좌). 온통 가시로 엉켜있는 찔레의 가지는 정순이 겪은 시련인가 보다(중). 산중턱에 피어난 찔레(우)

 찔레나무 울타리


한편, <<시경>> <용풍> 장유자(墻有茨)에서는 남녀 간의 애정을 읊은 시로서  좋은 풍속을 흩뜨리는 것과 방탕함을 경계하 있다. 이 시는 위(衛) 나라 선공(宣公)이 죽자 그의 서자인  완(頑)이 선공의 부인 선강(宣姜)과 불륜을 저지르자, 시인이 이를 비꼬며 풍자하여 노래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담장의 찔레나무 치워버릴 수가 없구나 / 방 안에서 하던 이야기 말 할 수가 없도다 / 말한다고 해도 추하기 그지없네

*장유자:담장의 찔레나무


남녀 간의 정열적인 애정행각을 상당히 완곡하고 해학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이 시는 남녀 간의 애정문제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방 안에서 불륜을 행하고 있는 연인들은 찔레나무 울타리라도 없었으면 더욱 곤란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찔레나무 울타리가 불륜의 현장을 다 가려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불륜은 찔레나무의 울타리를 넘어, 온 나라에 퍼져 백성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일찍이 공자가 장유자(墻有茨)〉나 〈상중(桑中)〉의 시를 시경에 넣은 이유는 비록 시가 외설적이고 풍속을 헤치는 내용일지언정 후세에 교훈을 남기고자 하는 뜻에서였다. 이후로 글 읽는 선비는 장유자 편을 읽으며 서로 경계하는 마음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영조는 세손에게 장유자는 아예 읽지도 말라고 하며  훈계한 바 있었던 것이다.


장미같이 되고 싶지 않아 


찔레가 소설 <찔레꽃>에서 순수함과 순결 그리고 값 높은 영혼으로 표현되었듯이 찔레는 순전한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나무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분포하며 그리 높지 않은 산기슭이나 냇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백의민족의 나무인 것이다.


찔레는 장미과의 식물이다. 그래서 찔레는 들에 피는 들장미라고도 한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장미의 종류를 무려 2만 5천 종이나 만들었다. 인간은 아름다운 장미를 보고 더 이쁘고 더 색다르고 또 다른 장미를 끊임없이 찾는다. 인간의 본성이 아름다워서일까? 순수한 원래의 장미는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찔레가 장미같이 수많은 변종으로 사람들의 코를 킁킁거리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찔레의 소박한 꽃잎에 여러 색깔이 가미되어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들에 피는 그 그윽하고 감미로운 순수한 찔레향을 사람들은 자칫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산과 들, 그리고 냇가에서 그 색깔 그 향기 그대로 찔레는 계속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뒤늦게 알아버린 찔레꽃의 향기를 잊지 못한다. 내 기억 속에 간직한 소중한 옛 찔레의 추억을 되살려 감상에 젖어보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만큼 옛 추억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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