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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Aug 11. 2023

숭고한 아름다움 연꽃

숭고한 아름다움 Ⅰ


연꽃은 아름답다. 화사한 꽃잎은 부처의 두광(頭光)에서 뿜어지는 광명의 빛인 찬란한 꽃빛을 허공에 발하는 듯하다. 연못 위의 수많은 연꽃은 수천의 연꽃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올라왔고 연꽃 속에는 수천의 보살이 앉아 있는 듯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연꽃은 실물 앞에서도 수채화를 보는 듯 묘(妙)한 색감을 연출한다. 연꽃잎의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잔잔하게 흐르는 색감과 온도의 차이는 연지 찍고 곤지 찍은 신부의 곱게 화장한 얼굴과도 같다.  커다란 연꽃을 이고 있는 호릿한 외줄기 가지는 한껏 무르익은 아름다움을 온전히 연꽃에 돌리려는 듯 곁가지도 없이 외로이 버티고 서 있다. 연꽃의 가지는 현세의 삶과 극락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인 양 속이 비웠다. 저 백제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백제문화의 정수 금동대향로의 금동 연잎은 실제 연잎으로 환생하여 우아하게 수면 위에 떠오른다. 연잎은 최초의 대지의 고향임을 잊지 않은 듯 드넓은 잎을 풍요롭게 펼치고 있다. 수면 위에 낙하한 꽃잎은 잔잔한 호수위의  나룻배인양 뱃전을 치켜든 채 유유히 떠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수천 송이 연꽃은 연화화생(蓮華化生)으로 극락세계에서 환생할 꽃 그대로 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 아름다운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가 현실에서 펼쳐질 수 있단 말인가.


백제 금동대향로의 연잎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좌). 수면 위에 떨어진 보리빛 핑크의  연잎은 나룻배인양 청개구리가 올라타 있다(우, 양세훈작가)

연꽃은 불교에서만 상징적인 꽃이 아니다. 연꽃은 고대 인도에서 부처가 탄생하기 이전에 빛과 생명의 상징이었다. 고대의 이집트와 앗시리아 및 오리엔트 지방에서도 연꽃은 종교 및 신화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많은 조각이나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꽃이 갖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의 상징은 꽃의 아름다움을 초월하여 사후나 극락세계에서의 환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연꽃에 종교적 의미의 숭고함을 제외시킨다 해도 연꽃이 갖는 자체의 아름다움과 고아한 자태가 손상되지는 않는다. 연꽃은 그 자체로서도 얼마든지 숭고하다.


연꽃처럼 불타는 가슴  


시경에서도 연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연꽃은 너무 아름다워 상대방이 연꽃에 미치지 못해 속이 상하고 연꽃에 비견하면 내 가슴은 울렁거린다.


<<시경>> <정풍> 산유부소(山有扶蘇)는 연꽃은 아름답건만 내가 상대할 남자가 칠칠치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시다. 연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 아름다운 연꽃에 비하여 내 앞에 나타는 사람은 미치광이뿐이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차라리 연꽃을 보지 말 것을 하며 여인은 한탄하고 있다.


산에는 부소나무 개펄에 연꽃 / 자도는 안 보이고 마치광이 앞에 있네

*산유부소:산에는 부소나무

*자도:잘 생긴 남자


<<시경>> <진풍(陳風)> 택비(澤陂) 또한 아름다운 부들과 연꽃을 보고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다.


연못가 저 언덕에 부들 연꽃 한창이네 / 멋있는 저 사나이 훤칠하고 근엄해서 / 자나 깨나 하릴없이 뒤척이며 지셉니다.

*택비:연못의 둑


아름다운 연꽃만큼이나 멋진 사나이를 보았으니 연꽃 속의 타 들어가는 열기만큼 가슴이 설레고 애간장이 탄다. 연꽃은 꽃잎의 중첩으로 내부의 열을 스스로 발생시킨다.

 

경외지심(敬畏之心)


연꽃은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다운 꽃이지만 연꽃에서 느껴지는 외경(畏敬)은 오히려 나와 연꽃 사이에 거리를 두는 묘한 기운이 있었다. 연꽃의 아름다움은 내 뇌리 속에 장치되어 있는 연꽃  종교적 선입관에 어느 정도 소외되고 있었다.


연꽃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연꽃의 생긴 모양에도 있었다. 연자방이라고 하는 구멍이 숭숭 뚫린 연꽃의 괴상하고도 플렛한 꽃턱은 연꽃에 대한 의문과 기괴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여러 개의 열매가 자리하고 있는 연자방은 환공포증이라고 하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을 보면 이 기괴하고도 플렛한 연자방은 연꽃의 아름다움과는 왠지 거리가 있어 보였다.


연꽃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은 꽃의 아름다움을 산란시키는 방해요소이기도 했다.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물  위에서 피어나는 연꽃. 사람들은 왜 연꽃의 뿌리가 내린 진흙을 더럽다고만 하는가? 진흙이 더러우면 진흙에 몸을 심고 있는 뿌리도 더러울 것이며 연꽃조차 뿌리와 한 몸이 아닌가? 진흙은 정말 더러운 흙인가? 연꽃은 그 수치스럽고 더러운 뿌리를 감춘 채 꽃대를 내밀어 혼자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걸까? 연꽃은 나에게 외경과 아름다움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면 위에 피어난 연꽃(좌). 연자방에 각각 열매가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우)

뜨거운 햇살이 작열하는 8월 중순. 나는 연꽃을 찾아 관곡지로 향하기로 했다. 연꽃에 대한 외경은 잠깐 두고 연잎이 바람에 춤추는 연꽃 숲에서 새와 곤충들과 함께 유희를 즐겨보리라. 뜨거운 태양아래 연꽃은 더욱 빛을 발하리라. 내가 비록 연꽃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리라 다짐해도 연꽃은 숭고한 꽃이며 연꽃에 대한 외경(畏敬)은 여전히 한 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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