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민초들의 삶Ⅰ
논밭이나 길가 가장자리에서 흔히 자라는 질경이는 고난 속에도 삶을 꿋꿋이 이어가는 민초의 삶을 떠오르게 한다. 질경이가 얼마나 끈기 있는 삶을 살아가는지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 한나라의 '마무'라는 장수는 전장에서 전차바퀴 앞에 깔린 풀을 뜯어 말과 병사들에게 국을 끓여 먹였다. 병과 피로에 찌든 말과 병사들은 질경이 국을 먹고 말끔히 원기를 회복했다. 이후로 질경이는 차전초(車前草)의 닉네임을 얻었다.
말발굽에 깔려서도 삶을 이어가는 질경이는 민초들의 삶을 닮았다. 겨울의 추위에 뿌리를 땅에 깊이 박고 잎을 대지에 바싹 붙여 찬바람을 이겨내는 질경이의 모습은 민초들의 겨울나기다.
이동욱은 그의 장편소설 <질경이의 노래>에서 역경을 헤쳐가며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작품은 6.25 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산업화과정에서 강원도의 깊은 산골에서 화전을 일구어가며 삶을 이어가는 화전민의 삶을 그렸다. 작가는 "그저 역사의 수레바퀴에 밟히고 짓이겨지고 찢기더라도 살아남은 이파리들처럼 살아가야 하는 모양입니다" 라며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한다.
Ⅰ평화를 즐기다Ⅰ
<<시경>> <주남> 부이(芣苢)는 아낙네들이 한가로이 질경이를 마음껏 뜯는 평화로운 장면을 묘사했다. 질경이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만큼 약효가 뛰어난 식물이다. 또 잎을 데쳐서 식용으로도 먹으면 맛과 건강에도 좋다.
해마다 봄이 오면 아낙네들은 들판에 나와 나물을 뜯고 봄의 기운을 만끽한다. 그러나, 삶의 긴 여로에는 기근과 질병 그리고 전쟁과 같은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일들도 복병처럼 웅크리고 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순간의 앞에는 환란의 시간도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낙네들의 한가롭게 질경이 뜯는 순간만큼은 실로 평화가 있음이요, 평화는 또한 즐기고 만끽할 필요가 있는 소중한 때이다.
질경이를 캐러 가자 / 질경이를 찾아보자/ 질경이를 캐러 가네 / 질경이를 뜯었구나
질경이를 캐고 캐자 / 질경이를 뜯었구나 / 질경이를 캐러 가네 / 질경이를 뜯었구나
질경이를 캐러 가서 / 옷자락에 넣어두자 / 질경이를 캐러 가서 / 옷섶에다 넣어두자
*부이:질경이
질경이가 수많은 씨앗을 퍼뜨려 자손을 번식시키듯 이 시에서도 아녀자들은 많은 자손들을 낳아 다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여인들은 이미 자식을 많이 낳은 만큼 행복한 여생을 질경이를 뜯으며 보내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에 의존하는 고대 사회에서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국가적으로도 장려할 만 일이었다.
질경이 열매(좌), 질경이의 꽃대에서 쉬고 있는 날개띠좀잠자리(중), 질경이 꽃(우). 들판에 피어 나는 질경이의 꽃에서 숨죽이는 감동이 전해진다. Ⅰ전략가 질경이 Ⅰ
밟히며 살아가는 풀이지만 질경이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전략가다. 질경이는 일부러 밟히고 뜯길 심산으로 사람이나 동물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터를 잡는다. 질경이의 오픈북 전략이다. 그리고 밟힐수록 질경이의 영토는 넓어만 간다.
질경이의 열매는 점액성 성분을 가지고 있어 사람이나 동물에 밟힐 때 발에 쉽게 묻어 이동한다. 질경이의 끈끈이 전략이다.
질경이는 수목과 같은 큰 줄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찬 바람이 불어도 부러질 염려가 없다. 아니 질경이는 줄기조차 없다. 질경이는 뿌리에서 직접 줄기와 꽃대를 내민다. 질경이는 겨울의 세찬 바람이 불어도 잎을 대지에 바싹 밀착하여 바람과 추위를 극복한다. 이른바 로제트( Rosette) 전략이다.
질경이는 여타의 잡초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씨를 생산하여 발아율을 높이고 생존성을 높인다. 질경이의 인해전술이다.
질경이는 짓밟히고 이지러져도 땅속줄기로 이어진 뿌리로 다시 고개를 내민다. 질경이의 참호전략이다. 민초들이 고단한 삶을 헤쳐가는 삶의 방편은 질경이의 그것을 닮았다.
Ⅰ하이라이트Ⅰ
질경이가 꽃을 피우는 순간은 질경이 생애의 하이라이트다. 잎 사이에서 꽃자루를 길게 내밀어 피는 하얀 꽃은 우주 정거장에서 나와 유영하는 우주인처럼 질경이의 꽃대에 아슬아슬 매달려 나부낀다. 찌는 듯한 여름날, 들판에 핀 질경이 꽃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이 잔뜩 굽힌 허리에서 통증의 신호가 만만치 않다. 어느덧 내 신발아래 질경이의 열매는 묻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