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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Apr 05. 2023

생각하는 갈대

 생각하는 갈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말이다. 갈대는 생각이 없는 걸까? 파브르(J.H FABRE 1823-1915)는 그의 역작 곤충기외에도 <식물기>라는 책도  썼다. <식물기>에서 갈대가 참나무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만큼 바람이 무섭지 않아. 꺾이지 않도록 몸을 구부리니까". 제 아무리 두텁고 크게 자란 참나무도 거센 강풍에는 속절없이 뿌리째 뽑히기 마련이다.


 전설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를 기억하는가? 알리는 그의 말과 같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곤 했다. 로프에 기댄 갈대와 같은 그의 유연한 몸동작에 상대방은 헛방을 날리기 일쑤였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이미 속을 비운 갈대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바람에 맞설 수 있었다.


갈대는 앞으로 닥칠 재난에도 충분한 대비를 해 놓았다. 땅속줄기를 만들어 예비군을 조직했고 가지의 속을 비워 빠른 성장을 유도했다. 혹시나 부러질까 중간중간에 마디를 두어 튼튼히 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간혹 많은 식물의 골칫거리인 밤나방이 갈대에 알을 낳아 애벌레가 속을 갉아먹더라도 인고의 다이어트를 통해 애벌레의 활동공간을 제한하는 하이 테크닉을 발휘한다. 갈대는 씨를 많이 비축하여 바람에 날려 자손증식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갈대는 마침내 대제국을 이루었다. 이쯤대면 갈대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라는 단어가 인간 상호 간에 통용되는 말이라서 식물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이 좀 난해할 뿐이다.


무수한 씨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좌), 가볍고 부드러운  털은 씨앗을 멀리 날린다(중), 부러진 갈대는 땅속줄기로 다시 살아난다(우)

 펄벅의 갈대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대지의 작가 펄 S. 벅(1892-1973)의 소설 <살아있는 갈대 (The Living Reed)>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고난과 역경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미국작가인 그녀가 순전히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의 토속적인 문화와 민족의 한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묘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소설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김일한 일가의 꿋꿋한 삶을 갈대에 비유했다. 김일한의 아들 연춘의 대화는 갈대의 상징을 말해준다.  "제 이야기는...... 아버님께서 제 얼굴을 영영 보지 못하게 되면, 제 이름을 영영 들을 수 없게 되면, 이 아들 역시 하나의 갈대였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제가, 갈대 하나가 꺾였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는 다시 수백 개의 갈대가 무성해질 것 아닙니까?" 연춘의 대화는 은근과 끈기의 우리 민족의 혼이기도 한 것이다. 세계적인 대문호 펄벅은 한국인의 근성과 정서를 놀라울 만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과 한국인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공존의 관용


객주의 작가로 알려지기도 한 김주영의 장편소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겪은 이야기를 그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낸 작품이다. 고기잡이가 갈대를 꺽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갈대는 배를 띄우는데 비록 어부의 발목을 잡을지언정 갈대가 어부에게 주어지는 이익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갈대는 각종 어족자원을 풍부하게 해 준다. 갈대는 생태계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갈대는 수질정화의 달인이며 주위의 영양화를 지속화하여 강이나 냇물의 생태계를 건강케 한다. 갈대는 또한 각종 수생식물과 곤충 그리고 조류와 양서류, 그리고 파충류에 이르기까지 건전한 생태계순환의 중심에 있다.


김주영의 작품에서는 인간이 양심을 지키고 미래를 위한 관용과 선처를 베풀어주는 것, 또 인내해 주고 숨겨주는 것 등의 묘사가 곳곳에 숨어 있다. 마치 어부가 갈대를 베지 않는 것은 생태계의 공존을 위한 것이고 인간도 공존하려면 서로의 관용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호소이기도하다.


한강변의 갈대. 우리 님을 찾기에는 강이 너무 넓고 길다(좌). 연인을 위로하려고 할까? 굴뚝새가 갈대 위에서 지저귀고 있다(우)


 님은 어디에


<<시경>> <秦風 (진풍)> 蒹葭(겸가)는 사랑하는 님의 행적을 따라 갈대밭을 헤매는 시다.


갈대 푸르고 흰 서리 내렸는데 / 사람 저쪽에 있도다 / 거슬러 올라가 따라가려 하니 험한 길이 멀기만 하네 / 물을 따라 내려가 그를 따르고 싶지만 빤히 강물의 한가운데에 있구나.

*겸가:갈대


사랑하는 님을 찾아 강가의 갈대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걸어보지만 님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강은 너무나 넓고 길어 우리 님을 찾는 길이 험하고도 멀다. 시경 속의 갈대는 어떠한 이루지 못할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듯 시경은 남녀 간의 애정이나 연민을 주제로 한 내용이 많다. 한강변의  갈대숲을 지나며 갈대가 보여주는 생명력과 그 삶의 지혜도 같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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