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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Oct 10. 2023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모과나무

이규보동국이상국집 고율시(古律詩)에 모과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이규보는 어느 날 보광사 사찰의 스님을 포함한 몇 사람들과 같이 유쾌하게 밤을 지새우며 놀다가 스님이 내온 모과에 시 한수를 읊었다.


반쪽 붉은 모과가 /  편편이 칼 끝에 떨어지네 / 융숭한 대접을 어찌 갚을까 / 좋은 경거 없어 부끄럽기만 하네

*경거:옥과 패옥


시에 나오는 경거(瓊琚)는 아름다운 옥이란 뜻으로 훌륭한 선물을 이르는 말로 시경에 나오는 말이다.  시경에 모과를 받고 패옥으로 답례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시인은 시경을 빙자하여 스님이 내어 준 모과의 대접에 자신은 패옥이 없음을 미안해하며 넋두리를 하는 장면이다.


옛 글 읽는 학자들은 시경을 모르고는 당최 선비노릇이 불가능했다.  시경은 국가 간의 외교에서 뿐만 아니라 임금과 신하 사이에서도 빈번히 인용되었고 출세의 수단이기도 해 선비들은 죽자 사자 시경을 달달 외웠다.


<<시경>> <위풍> 모과(瓜)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라는 속담에 알맞은 시다.  모과를 던져준 입장에서는 뜻하지 않게 패옥으로 돌아왔으니 이 무슨 횡재인고.


내게 모과를 던져 주어서 / 아름다운 패옥으로 답례했지요 / 보답하기 위한 것은 아닐쎄 / 오래도록 잘 지내자는 뜻이지


시에서 패옥으로 답례한 건 아부나 다른 목적이 아니요 다만 평화롭게 잘 지내자라는 뜻이니 세상 일이 이렇게만 돌아가 준다면 얼마나 좋을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창 서로 빼앗고 뺏기지 않으려는 각박하고 살벌한 이 세상에,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죽고 죽이는 이 험한 세상에 모과나무라도 한 그루 더 심어야 할까 보다. 


시라는 것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시경의 시도 읽는 이에 따라서 주관적인 해석을 달리하곤 했다. 모과를 던져주는 것은 여인이 남자한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행위로도 해석되었다. 당시에 과일을 상대방에게 던져 마음을 떠보는 로맨틱한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감미로운 향기 그윽한 모과를 받은 남자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모과가 울퉁불퉁 못생겨 막 던져주기에 알맞은 과일일 것이리라는 해학적 묘사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과거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은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맨트로 익살을 부리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곤 했다. 그는 비록 못생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오랫동안 가져다주었다.


못생긴 모과나무에도 나를 즐겁게 해주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다. 모과나무의 꽃은 처녀가 처음으로 화장을 하고 외출하는 양 지독한 수줍음을 띠고 활짝 피어난다. 가을날 잎 떨어지고 노란 모과가 나뭇가지에 달 걸친 듯 매달려 있는 모과 노란 열매는 가을벌판의 수석 대변인이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가을 모과는 울긋불긋한 갑옷을 걸친 나무껍질의 질감에 깊어가는 가을의 정수를 더해준다. 

어느 '툭' 하고 모과 떨어지는 귀울림에 을의 깊은 고적함도 불현 느껴보는 것이요, 모과에서 나오는 달달하고도 그윽한 향취는 코를 간질인다. 무릇 과일의 향은 일순 나는 듯 사라지고 오래가지 못하나 모과의 단내 나는 향기는 양초가 제 몸을 마지막까지 태우듯, 모과는 제 자신을 들도록 태워가며 향기를 내어 준다. 모과는 외모보다는 향취를 취했으니 누구라도 흠뻑 향기에 취해보기에 마땅하리라. 

수줍은 듯 피어난 모과 꽃이 순박하기 그지없다(좌).  햇빛을 듬뿍 받고 익어가는 모과 열매는 가을의 색의 으뜸이다(우)

과일의 살과 즙으로 위장을 채우는 포만감보다는 모과가 내어놓는 차 한잔의 은은하고도 감미로운 맛에 취해보는 즐거움도 특권이라 울퉁 불퉁한 모습에서 반전되는 매끄러움과 손에 꽉 잡히는 묵직하고도 둔탁한 질감도 모과에서나 느껴보는 감상이다. 모과는 반반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촉감과 질감으로 즐거움을 준다. 모과를 멀리 하지 않는 이유다.


물취이모(勿取以貌)라는 말이 있다. 사물의 외모를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모과나무의 꽃은 비록 목련만큼 크지  못하나 모과가 못생겨서 오히려 부끄러운 듯 연분홍 빛 소박한 꽃잎의 빛깔이 애틋하도록 아름답다. 모과는 알게 모르게 바람과 햇빛을 차곡차곡 모아 향기를 속에 축적하고 있었다. 


"살구는 한 가지 이익이 있고, 배는 두 가지 이익이 있지만 모과는 100가지 이익이 있다"라고 했다. 예부터 모과는 많은 질병을 치료하고 몸에 좋은 약이 되어 주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친구나 애인 사이에 사랑과 우정의 징표로 모과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시경에 던져준 모과는 못생긴 모과에 그친 것이 아니라 패옥을 받을 만한 값어치 있는 과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과나무가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욕설과 비방, 그리고 총알과 포탄을 상대방에게 날려 보내는 대신 모과라도 던져 주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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