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운경 Oct 08. 2023

 붉나무는 비단을 두르고


비단 두른 금목


가을에 빛을 발하는 붉나무는 옻나무과의 한 수종으로 여러 가지로 살펴볼 곳이 많은 나무이다. 우선 이름에 어울리듯 붉게 타오르는 단풍은 붉나무의 트레이드마크다. 잎의 줄기에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여타 식물에서는 보기 드문 기한 모습이며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열매에 소금의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열매를 둘러싼 백색 가루도 매우 특징적인 현상이다. 오배자라고 하는 잎에서 나는 혹(충영)은 약재로도 쓰이는 귀중한 재료가 된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각자의 나무에 피는데 암꽃과 수꽃을 찾아보는 재미는 흥미진진하다.


조선후기 홍만선의 홍재전서에 이르기를 소 한 마리는 일곱 사람 분의 일을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귀중한 소가 병이라도 나면 천금목(千金木)으로 외양간을 두르고 그 잎을 끓여 식힌 뒤에 먹이고 또 잘게 썰어서 풀과 같이 섞여 먹인다고 했다. 이때 천금목은 곧 붉나무니 귀하게 쓰이는 나무라 천금목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가을의 붉은 기운을 겨루고자 하면 붉나무를 당할 나무가 없다. 산불이라도 난 양 가을 붉나무의 붉은 기운은 화염을 토하는 듯하다. 가을은 붉나무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옛 선비들은 가을 단풍을 붉은 비단에 비유하곤 했다.  홍화로 물들인 곱고 아름다운 붉은 비단에 비견한 것인 만큼 붉나무의 단풍은 실로 슬프도록 곱다 해야 할까 붉은 기운을 마음껏 뿜어내는 것이다.


Ⅰ 터보 엔진Ⅰ 


붉나무에서 신기한 것을 하나 골라보라면 아마도 당장 눈에 띄는 줄기의 깃잎일 것이다. 독자들도 이미 눈치챘겠지만 붉나무의 잎과 잎의 앞뒤에 있는 줄기에 양 날개의 잎이 가느다랗게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긴 것이 청동기시대의 세형동검 같기도 하고 화살의 깃 같기도 한 것이 가을에 단풍이 들면 나도 잎일세라 같이 붉게 물든다. 붉나무가 줄기에 날개를 다는 이유는 고유의 생존전략으로 진화하여 현재의 잎과 같이 엽축에 날개를 가진 형태를 취하고 있고 엽축의 날개는 잎의 표면적을 늘려 더 많은 광량을 확보할 수 있게 해 주고, 이를 통해 광합성 작용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엽축에 날개를 가지고 있는 수목으로는 중국굴피나무와 개산초 등이 있다. 결국 붉나무 엽축의 날개는 광합성의 효율을 배가 시킬 뿐 아니라 가을 홍엽 또한 더욱 물들게 해 즐거움을 더해주는 현대식 터보엔진인 셈이다. 


붉나무의 줄기에 화살깃 모양의 날개가 달려 있다(화살표. 좌). 북나무 잎에 수북이 떨어진 꽃잎 (우)

Ⅰ 수꽃 따로 암꽃 따로Ⅰ 


붉나무는 또한 암꽃과 수꽃이 별개로 피는데 각기 다른 나무에서 꽃을 피운다( 家花). 원뿔형으로 생긴  붉나무 꽃은 수많은 꽃이 피지만 그 향기를 멀리 보내지 않고 나무 주위에서나 느낄 수 있는 절제된 항기를 발한다. 코를 꽃에 가져가면 박주가리 꽃 향기보다 다소 약한 고소하고도 향긋한 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붉나무 수꽃은 5장의 꽃잎 위로 다섯 개의 노란 수술대가 올라온다. 재미있는 것은 수꽃에도 작은 암술이 있는데 씨방이 퇴화한 탓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암꽃은 암술머리가 3갈래로 갈라지고 확연한 노란 씨방이 보인다. 그리고 암꽃에도 수술이 있는데 암꽃에서는 수술이 역시 퇴화하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 암꽃임에도 불구하고 수술은 왜 달려 있을까? 흥미롭게도 곤충들은 암술과 수술이 같이 있는 꽃에 접근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꽃들은 암꽃과 수꽃이 같이 있는 양성화이고 최초의 꽃도 이러한 양성화였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벌과 같은 곤충은 이러한 양성화에 접근하는 일을 수억 년 반복했을 것이므로 단성화인 암꽃도 곤충을 유인하려면 수술을 장치했을 것이니 실로 식물은 놀라운 환경에의 적응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붉나무는 암수의 꽃이 각각 다은 나무에서 핀다.붉나무의 수꽃은 노란 꽃밥이 있는 수술이 확연하다 (화살표.좌). 붉나무의 암꽃은  씨방을 가지고 있다 (화살표. 우)

Ⅰ 오배자Ⅰ 


붉나무의 날개에 생기는 오배자라고 하는 혹(충영이라고 한다)은 동의보감에 다섯 가지 치질과 장풍, 탈항을 치료한다라고 나온다.  오배자가 생기는 이유는 오배자면충이 붉나무의 잎에 자극을 주면 붉나무는 이에 대한 방어 작용으로 식물세포의 덩어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곤충에 생기는 혹은 곤충과 식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특이한 현상으로 식물학자에 의하면 "곤충의 입에서 분비된 물질과 배설물과 보조분비 기관에서 분비된 물질이 다양한 곤충과 식물의 상호작용에 중요하게 작용한 결과 '결정화된 혹'형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한다 (곤충학. 월드사이언스). 오배자안에서 서식하는 오배자면충은 자그마치 일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오배자는 점차로 타닌성분이 늘어나며 지혈, 해독, 치산, 피부질환, 아토피, 습진 등을 위한 치료제로 그리고 그 외 다양한 분야에서 다용도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관여된 소중한 벌레혹이다. 식물과 곤충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생존방식도 경이롭지만 서로가 공존하며 벌어지는 버라이어티 한 현상은 더욱더 우리를 신비의 세계로 안내한다.


오배자 충영



Ⅰ 짭짤한 열매Ⅰ 


붉나무 열매는 사람을 비롯한 여러 동물들에게 유익하다. 붉나무를 염부목이라고 하듯 열매가 익어감에 따라 끈적한 가루가 열매의 주위를 감싸는데 맛이 시고 짜다. 소금은 예로부터 일반 백성에게나 나라에서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으나 소금의 공급을 위해서 백성들은 실로 고된 노동을 감수해야 해다. 고려 충신 안축은 그의 시 염호(鹽戶)에서 장작을 때 가며 소금을 힘겹게 생산하는 백성들을 묘사하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처량하고 애처로워 동해의 바닷물이 일어나 모두 소금으로 변했으면 하고 읊조렸다. 정약용은 그의 경세유표에서 소금의 긴요함이 5곡과 같아 소금 없이는 채소 등 여러 음식물을 먹기 곤란하여 비록 5곡이 있더라도 소금이 없으면 백성이 능히 먹지 못한다고 하여 소금의 중요성을 필하였다.  때로 소금이 풍년이라도 들면 귀한 것이 흙과 같고 소금이 흉작일 때는 반대로 옥과 같다고 하였으니 정약용은 백성의 식생활(食生活)을 돕고 국가의 재용(財用)을 넉넉하게 하는 것에 소금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고 하였다. 음식의 맛을 내는 것도 그렇지만 채소를 주식으로 하는 농민들은 소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이렇게 소중한 소금을 그리 쉽사리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닷가와 떨어져 있는 산지에 사는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이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땔감으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생산하였으므로 노동과 시간이 필요하여 대부분의 백성들은 소금 구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 한 때 북나무의 열매에서 수확할 수 있는 소금과 같은 흰 물질은 백성들에게 그야말로 마법의 가루였을 것이다.



붉나무 열매에 점차적으로 소금기가 있는 백색가루가 덮이고 있다.


인생은 즐겁게 Ⅰ


<<시경>> <당풍> 산유(山有樞)아 있을 때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읍소하는 듯하다. 붉나무 꽃 필 무렵이면 가을의 속도가 본격화된다. 하얀 꽃잎에 어느덧 열매가 붉은 기운을 나타내고 이윽고 잎은 빨리 물들어간다. 이와 같이 세월은 촌음이라 빨리 흘러가니 더 이상 세월 가기 전에 인생을 즐겨야 후회 없으리라.


산에는 나무 들에는 느릅나무 / 그대는 마당 있어도 물 뿌리고 쓸지도 않는구나 / 그대는 북과 종을 두고서치지도 두두리지도 않으니 / 그대가 죽고 나면 딴 사람이 가져갈걸

*산유추:


인생은 두 번 세 번 돌아오지 않는다. 한번 사는 삶에 있어 충분히 즐기고 노닐지 않으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오겠는가. 붉나무의 아름다운 단풍과 노랗게 익은 느릅나무의 단풍도 마지막 불꽃을 사르는데 늙어가는 어찌해서 나 자신도 즐겁게 지내지 못하리오. 이 시는 목표에 매진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좋은 예가 되리라. 아름다운 계절에 붉은 기운을 뽐내는 붉나무처럼 우리도 한전 실컷 즐기고 향유해 봄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오로지 한 방향만 보고 항해하는 외골수의 인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붉나무도 갖은  조화를 부리고 색을 바꾸고 하듯이 우리 인생도 다양하고 즐겁게 살아 볼 일이다.


한그루 붉나무 심고 싶어


단풍에 우열이 있으랴 마는 나는 매년 붉나무 단풍을 손꼽아 기다린다. 붉나무의 열매를 새들이 섭취하고 그 씨를 땅에 떨어뜨리면 붉나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자란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산지 양쪽에 어느 해인가 갑자기 붉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여 가을이 오면 풍악을 울리듯 주위를 빨갛게 물들인다. 단풍도 한해를 마감하는 수목의 수작이라 나이를 들면서는 왠지 울적해지기도 하고 구슬픈 기운이 들기도 하는 것이 가을비에 단풍잎이라도 대지에 떨어지면 그 강도가 더하여 그만 눈을 돌려 버리기도 한다. 자연의 순환이란 사람의 감정을 반영하지 않는 것인데도 봄이면 매화 피고 화려한 백색의 살구꽃이 필 때면 왠지 새로운 즐거움과 희망이 솟는 듯하고 붉게 물드는 가을이면 다시 저무는 해처럼 우울해지는 것은 인간의 수작인 것이다. 가을을 슬퍼하는 건 뭇사람들의 인지상정이라 일찍이 매천 황현도 단풍 든 깊은 산촌엔 가을 탁주가 그만일세라고 읊었듯이 잠시 붉은 단풍에 홀려 감정이 복받치는 것이니 어디 잘 익은 술에 전이라도 있으면 말끔히 해소될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해마다 가을이면 느껴보는 마음이라 비단을 두른 듯 붉게 물든 붉나무는 눈과 마음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건 어찌 감당할 수 없어 이 가을에 뜨락이라도 있으면 당장에 붉나무라도 한그루 심고 싶다.

四二           

붉나무열매에 소금 맛이 나는 백색의 가루가 젚이고 있다(좌). 서서히 물들어 가는 10월 초의 붉나무 잎(우)


이전 01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모과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