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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Oct 12. 2023

산초나무를 지나며

I 추억 I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0월, 숲 공부를 같이 하는 남해가 고향인 H와 강화도의 논길을 걷다 산기슭의 산초나무와 조우했다. 어린 시절부터 들판과 바닷가에서 자란 H는 산초나무의 추억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산초나무 열매를 기름을 짜서 이용했다는 것과 산초나무 가지와 잎을 뜯어 개울가에 뿌리면 물고기가 기절하여 둥둥 떠오른다고 하고, 산초와 비슷한 초피나무는 열매의 껍질을 갈아서 가루를 사용한다고 다. 산초나무로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초문이라 기이하게 여겼으나  실제로  H가 고기를 잡았다고 하는 말에는 의아했다. 후에 알아본즉 조선왕조실록 세조 편에 여름철에 백성들이 산에 올라 산초나무의 껍질을 벗겨 가루로 만들어 냇물에 뿌려 물고기를 잡는다는 이야기가 있고 홍재전서의 시중에 초계(椒桂:산초나무와 계수나무)는 찧을수록 매운 걸 서로 겨룬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H의 경험이 과연 조상 대대로  전해  지혜음을 알 수 있다. H의 경험이 부러웠다.


I 산초나무 I


H와 산초나무를 가만히 뜯어보니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산초나무는 무더운 8월 햇빛이 따가워 우산을 받쳐든 양 활짝 피어나 한여름의 무성고 어두운 숲 속을 훤히 비춘다. 산초나무는  암. 수 딴그루로 자란다. 수꽃은 수술 5개이고 암술은 퇴화한다. 암꽃은 5개의 꽃잎에 수술은 없고 3개의 암술 밑에 씨방이 자리한다. 이렇듯 산초나무 꽃이 각자가 필요한 부분만을 취한다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전략을 쓰는 걸 보면  산초나무도 오랜 세월에 걸쳐서 경제학을 터득한 것이 분명하다.

햇빛을 가득 받은 산초나무의 꽃이 어두운 숲속을 훤히 밝히고 있다.


산초나무의 잎에는 샘점에서 독특한 냄새를 뿜어 곤충 등의 접근을 제약한다. 산초나무 뿐 아니라 모든 식물은 방어물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식물이 제 아무리 방어를 한다고 해도 기어이 그 방어선을 극복하고 잎을 섭식하는 곤충이 있으니 산초나무의 경우는 바로 호랑나비 애벌레이다.  마침 바로 옆의 산초나무에도 호랑나비 애벌레가 몇 마리 있어 애꿎게 애벌레를 툭하고 건드려 본다. 장군 하면 멍군이라 물고기도 기절시키는 강력한 성분을 섭식한 애벌레는 '나 잡아먹으면 너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하고 머리에서 노란 뿔(취각:냄새 뿔)을 내어 놓아 오히려 위협한다. 나는 움찔하여 그만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뱀과같은 모습은 상대방에게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여 포식자를 단념케 한다.

산초나무의 호랑나비 애벌레가 뿔(취각)을 내밀어 경계하고 있다(좌). 성충이 되어 꿀을 빨고 있는 호랑나비(우)

산초나무 큰 가지에 돋아난 멋진 가시는 미얀마 사원의 웅장한 불탑을 보는 듯하다. 불교 신자라면 산초나무에서 잠깐 불공을 올려도 될 불탑은 위용 있고 근엄해 보인다. 산초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불심을 키워 온 것일까 ?

산초나무 어린 가지의 가늘고 예리한 가시(좌). 미얀마의 사원의 불탑은 산초나무의 가시를 닮았다(중). 산초나무 큰 가지의 가시가 마치 불탑과 유사해 보인다(우)

햇살을 받으며 무르익어 가는 가을 산초나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풍성한 열매다. 산초나무의 수북하게 열린 까만 열매는 하얀 햇빛반사되어 다이아몬드의 빛을 발한다. 색치인 나로서는 비로서 흰색과 검은색의 조화와 아름다움 느껴본다.


I 풍성함 I


가득한 산초나무의 열매 탓인가 일찌기 <<시경>> <당풍> 초료(椒聊)에 산초나무 열매가 많아 기뻐하는 백성의 노래가 전한다


산초나무 열매가 됫박에 가득하네 / 저기 그분 명석하기 상대 없네 / 멀리 가지 뻗은 산초나무여

산초나무 열매가 두 손에 가득하네 / 저기 그분 명석하고 도탑도다 / 멀리 가지 뻗은 산초나무여

*초료:산초나무        

      

가지가 멀리 뻗고 열매가 가득하니 자손이 번성함이 저절로 따르는 것이요 나아가 나라의 흥망은 하늘에 달린 것이 아 산초나무 가지가 멀리 뻗듯 사람의 노력으로 나라가 흥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시는 주나라 문왕의 치적을 백성들이 높이 사 산초나무의 열매에 비유하여 부른 노래다. 따사로운 가을 볓 시 한 수 더하니 저절로 흥이 나고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산초나무 열매를 취한 후 휴식하고 있는 노랑딱새(좌). 까만 산초나무 열매가 빛을 발하고 있다(우)

I 욕심은 바구니에 I


산초나무 열매는 익기 전에는 식용으로 하고 잘 익은 열매는 기름을 짠다. 열매의 껍질은 야초라고 하고 지방함이 38%에 달하며 복부냉증 및 피부염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산초열매의 기름은 상온에서 항상 액체 상태로 존재하므로 언제든지 이용 가능하며 산초나무의 향신료는 에너지원이나 식품이 맛과 향 그리고 포만감과 미각 향상 시 중요한 지방질원이라고 한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열매에서 나온 기름과 잎 그리고 과피에서는 메탄올 추출물의 생리활성 물질 함량, 항산화, 항균 및 항암작용이 높게 나타났다.


이렇게 좋다고 하는 산초나무 열매를 눈앞에 두고 보니 슬며시 욕심이 난다. 한 줌 움켜쥐어 볼까 욕심도 내어 보았지만 허사일 것이다. 시인 김서안의 시 <산초 열매의 고백> 의 한 구절 "언덕바지 설한풍에 고인 한이다 / 흠뻑 등이 젖어 뒤따라 오는 바람의 교훈이다"라고 노래했듯 산초나무 열매는 햇빛과 비 그리고 구름과 바람소리 새소리를 듣고 이 만큼 자란 것이니 나로서는 함부로 건드릴 만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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