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도에 관한 생각
어린 시절의 우리 집은 누추한 만큼이나 여러 가지로 불편한 사항도 많았다. 기본적으로 다행히 전기는 들어왔지만 수도는 아직 없었다. 집에서 뛰어서 5분 거리에 동네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이 하나 있어 사람들은 저마다 빠께스(당시에는 이런 용어를 사용했다)로 우물물을 길어 집으로 날라 사용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으나 하루도 빠짐없이 무거운 빠께스로 물을 길어 날랐다. 우리 집은 언덕에 있었으므로 마지막 구간은 여간 힘든 코스가 아니었다. 집에 수도가 없다 보니 당연히 하수도가 있을 리도 만무였다. 너무 오래된 세월이라 우리가 쓰고 버린 물이 어디로 흘러갔는지조차 회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상수도를 통한 급수율이 1960년에는 22%, 1971년에는 36%(144개 도시 1,160만 명), 1976년에는 56%, 1981년에는 57%가 되었고 2014년 우리나라의 상수도 보급률은 98% 이상이라고 한다. 내가 1962년 생이니 우리 집은 22%의 상수도 보급률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하수도 보급율에 있어서는 1960년대의 하수도보급율 이 10%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고 하니 내 어린 시절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사치일 것이다. 현재는 하수도보급율이 95%를 넘는다. 하수처리에 있어서도 1980년 초에 10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다 2020년 기준 95 퍼샌트 수준까지 높아졌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30년간 물에 대한 연구를 한 이른바 물박사라 칭하는 최종수는 그의 저서 '물은 비밀을 알고 있다'에서 물에 대한 사실적 이야기 외에도 인문학을 접목시켜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자료에 의하면 인류평균수명이 1900년 47,3세에서 1999년 77세로 늘어난 이유가 상하수도의 보급에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상하수도 보급과 인간수명의 연장이 무슨 연관이 있었을까? 흥미 있는 대목이다. 여러 가지 수인성전염병으로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가 알려져 있는데, 상하수도의 보급이 이러한 전염병의 경로를 차단하는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하수처리가 인류의 건강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생각하니 새삼 하수처리의 고마움과 중요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지난 150년간 일류건강에 기여한 업적으로 깨끗한 물을 꼽았다.
또 재미있는 것은 더럽고 냄새나는 화장실이 옛날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던 것이 오늘날에 집안으로 들어와 그것도 버젓이 바로 안방에 까지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러한 기적이 벌어지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가 바로 수세식화장실의 도입과 하수시설의 완비에 있었다. 20세기 이후 수세식 화장실은 세계적으로 보급되었으며, 자동 물 내림 기능, 절수형 변기 등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어 더욱 효율적이고 위생적인 형태로 발전해 왔다. 현재에도 스마트 변기, 비데 기능이 포함된 변기 등 첨단 기술이 적용된 화장실이 등장하면서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수세식 화장실은 자연히 하수도로 연결되어 하수처리장에서 깨끗하게 처리되는 시대에 이르렀으니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제야 돌이켜보건대 어린 시절엔 세집이 공동으로 누추한 변소(당시 우리 동네에는 화장실의 개념이 없었다) 하나를 사용했다. 각 세대의 식구도 많아서 남녀노소 합하면 22명이나 되었다. 깨끗지도 않은 변소하나를 두고 아침마다 벌어지는 눈치작전과 쟁탈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UN의 발표에 의하면 아직도 세계 인구의 22억 명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관리되는 식수에 대한 접근이 부족한 반면, 42억 명 이상의 사람들은 안전하게 관리되는 위생 시설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작은 안심과 위생도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누군가에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꿈인 것이니 익숙함 속에서 감사함을 잃지 않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