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11): 지로나 미슐랭 여행기

숲에서 보낸 오후

by 을동이


우선 나는 스스로를 미식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기본적으로 ‘아주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이 거의 없다.
무엇을 먹어도 대체로 평균적이고, 먹을 만하다는 감상에 그친다.
그렇다고 음식을 남기거나 편식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할머니 손맛이 담긴 구수한 된장찌개 백반이나
여성들의 소울푸드라 불리는 떡볶이를 좋아하는,
토속적이고 친근한—어쩌면 싸구려에 가까운 입맛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난 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사실 미식가야.”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의 음식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무난하다고만 느끼는 내 혀가
미식가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입맛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었다.


추억의 맛


본연의 맛


새로운 맛


이 세 가지에만큼은 유독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전 세계 미슐랭 3스타 중에서도
여러 차례 1위를 차지하고, 결국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는 식당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첫 반응은 솔직히 ‘굳이?’였다.


남자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포기하지 않았고,
끈질기게 예약을 시도한 끝에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지로나**로 향하게 되었다.


지로나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도시 이름이었다.
나중에서야 이곳이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도 알려진 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발부터 우여곡절이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고,
탑승 직전에야 상황을 파악해
역 직원들이 급하게 우리가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동안 쌓여 있던 인종차별에 대한 기억들은 저 멀리 밀려났고,
나는 숨을 헐떡이며 달리면서
입으로는 계속해서


“gracias, gracias!”


를 외치고 있었다.








지로나에 도착할 때까지의 우리는
대략 이런 상태였다.
계속 달리고, 또 달리고.

‘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지?’
웃음이 섞인 초조함만 가득했다.








중세의 건물과 유적들은 분명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마음 깊숙이 와닿는 감동까지는 아니었다.


당시 스페인은 꽃가루가 유난히 많이 날리던 시기였는데,
식당으로 걸어가며 건넌 다리 위에서
꽃가루가 미친 듯이 흩날리는 장면을 마주했다.


그 순간,

이 도시는 인공적인 장엄함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 보니 작은 공원을 하나 발견했다.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대단하고 유명한 장소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나만의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이 숲이 그랬다.


남자친구가 “열받는다”고 했던 사진을 굳이 올려보자면,

이곳에서 우리는
수다를 떨고, 산책하고, 의미 없는 말들로 서로를 웃기며 시간을 보냈다.


이날의 오후는
그 유명한 미슐랭 식당보다도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서 보낸 이 시간들 역시
음식의 맛을 완성시키는 하나의 경험이자 기억이 되어
오히려 식당의 순간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


완벽했던 하루의 기억이
지로나라는 도시를 더욱 깊고 선명하게 남겨주었다.


다음에는,
그날의 음식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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