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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Aug 11. 2023

학생 인권과 학부모 갑질... 교사의 인권은 어디에?

공교육의 붕괴를 바라보며...

"너 오늘 잘 걸렸다, 내가 아침 자습 시간에 뭐 처먹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한번 말을 했으면 들어 처먹어야 할 것 아냐!"


땅딸막한 키에 다부진 체격, 얼굴엔 번들번들 개기름이 돌고, 위로 치켜뜬 실눈이 떨리는가 싶더니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부치고, 손목시계까지 풀어서 교탁 위에 올려놓는 사람은, 다름 아닌 중학교 2학년 과학 선생이자 학생 주임을 맡고 있는, 학교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무서운 존재였다.


고작 중학교 2학년인 14세 소녀는, 안 그래도 작고 가냘픈 구부정한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며 공포에 질려있었다.

선생이 그 솥뚜껑같이 두터운 손바닥으로 소녀의 뺨을 철썩 때리고, 단단한 나무 지휘봉으로 배를 쿡쿡 찌르는 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칠판이 있는 교실 앞머리에서 시작된 끔찍한 폭력은, 우악스러운 발길질에 차이고 밀려 정신이 혼미해져 있는 소녀를 기어이 때에 찌든 대걸레들이 서있는 교실 뒤편까지 몰아갔다.


여학생들만 모인 학교였던 지라, 교실 안의 소녀들은 모두 패닉에 빠졌다.

불쌍한 저 친구를 오뉴월 개 패듯 하는 선생에게 감히 뭐라고 한 마디 항의도 못한 채,

속으로 눈물을 삼키는 녀석, 훌쩍 거리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녀석 등 우리 모두는 공포와 충격에 휩싸여 돌이 된 듯 굳어있었다.


내 기억에...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 친구는 그렇게 엄청나게 맞을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친구들에 비해 허름한 옷차림에 성적이 좋지 않았던 숫기 없는 학생이었다는 것 외에는...

그 선생은 주로 만만한 학생들을 골라서 본보기로 혹은 본인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는데, 집안 형편이 좋지 않거나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 그리고 일명 발랑 까진 아이들이나 날라리로 표현되는 껄렁껄렁하고 태도가 좋지 않은 불량학생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지금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1988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 당시 우리에게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든, 전교 꼴찌든 간에 얼마나 더 맞았냐 덜 맞았냐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시대에 한 번도 맞지 않고 학교를 졸업한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의 매'나 '교육적인 차원의 체벌'이라고 둘러대기엔 그 강도가 너무 지나쳤고 편파적이고 폭력적이었며 비교육적인 행위였다.

'학생의 권리와 인권'이라는 표현은 그 시절에는 존재할 수가 없는 분위기였으니...

학생들은 교사를 어려워했고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갈까 봐 전전긍긍했으며,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다해 교사를 떠 받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90년대 초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런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물론, 훌륭한 교사들도 많았지만 학교마다 교사로서의 자질이 없는 폭력교사나, 한 교실에서 대놓고 학생을 차별하고 촌지를 밝히는 선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뉴스나 신문의 사회 면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맞았다는 기사를 종종 접하게 된다.

심지어 중학교도 아니고 고등학교도 아닌, 초등학교에서 6학년 짜리가 선생님을 때리고 발로 찼단다.

게다가 일부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갑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30여 년이 지났으니 굳이 천지개벽이나 상전벽해 같은 고사성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모든 것들이 엄청나게 변하고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정도가 지나치고 너무하지 않은가 말이다.


2011년 3월 18일,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관련 조항이 개정되면서 학교 내의 직접적인 체벌이 금지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법으로는 금지했지만 끊이지 않는 학교체벌'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학교 내의 체벌은, 마치 교사가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마땅한 권리나 당연한 관행 같은 것처럼 교육 현장에서 뿌리 뽑기 힘든 이었다.


앞서 예를 들었던 1980~1990년대 학창 시절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 아니더라도, 학교 내에서 선을 넘는 과도한 체벌이나 기합 등이 법적으로 금지된 데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안이 제대로 갖추어졌어야 했다.

다양한 개성과 각자의 사정이 다른 학생들을 교사 혼자, 체벌도 없이 교육하고 관리하도록 했으면 그에 맞는 적절하고 현실적인 대책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이 학생 인권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오늘날 교육계에 만연해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일부 학생들이 교사 지도에 따르지 않거나 교사에게 반말과 성희롱, 심지어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체벌 금지는 당연히 환영할 만 하지만, 현실적인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선 사실상, 교사가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게 되는 상당히 불합리한 제도가 되는 것이다.

일부 문제 학생의 경우에는 도저히 제재하거나 관리할  방법이 없어 교사가 아예 지도를 포기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고 한다.


이쯤에서 우리가 늘 가장 쉽게 비교하는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학창 시절을 모두 보냈지만, 해외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연년생으로 두 딸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확실히 미국의 공교육 체계는 한국에 비해 단호하고 엄격하다.

비록 내부적으로 교내 총기 사고 등의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기도 하고 모든 게 다 완벽한 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잠시 논 외로 두자.

그래도 명색이 '자유와 인권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이니, 교육적으로도 얼마나 자유롭고 관대할까 혹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권리를 줄까 궁금하기도 했고 기대감도 있었다.

열흘 후면 길고 긴 3개월가량의 여름 방학을 마치고, 두 아이들이 각각 여기 미국 학년으로 11학년과 12학년이 된다.

한국으로 치면 고2, 고3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긴 세월 동안 아이들을 미국 학교에 보내며 느낀 점들을 이야기하자면...


미국은 확실히 학생의 인권과 안전이 최우선이고 모든 시설물이나 시스템이 학생 위주인 게 맞다.

학교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교육청에 해당하는 기관에서도 늘 Student First를 최우선 순위로 하고,

강철 소재로 만들어져 버스가 전복되는 등의 사고에도 학생들을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견고하고 튼튼한 노란색 스쿨버스는 미국 공교육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의 도로 위에서 스쿨버스의 위엄은 가히 넘버원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데, 스쿨버스가 일단 스탑사인을 내밀고 학생들이 승 하차 할 때는 아무리 바쁘고 위급한 상황이라 해도, 뒤에 있는 차량들이 모두 정지해야 하고 추월할 수 없다.

만약 스쿨버스를 추월하거나 정지하지 않는다면, 교통 법규 위반으로 즉시 경찰이 출동해 엄청난 과태료를 물게 된다.


두 아이의 학부모로서, 학교는 항상 학부모에게 열려있는 곳이었고, 학부모들도 크고 작은 학교 행사나 소소한 학급 일에도 팔 걷어 부치고 나서서 적극 참여하고 돕는 분위기였다.

만약 내 아이가 학교에서 다른 학생이나 혹은 교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회의를 소집하거나 학교 측에 항의할 수도 있다.

그것이 내 아이를 위한 학부모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는 학교 일에 적극 참여하고 관여하면서 교사나 학교 관계자들과 함께 언제든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거나 문제 발생 시에는 적절한 대책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거기엔 분명한 조건이 따른다.

바로, 교사의 인권을 함께 인정하고 존중해 줄 때 학부모로서의 권리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가 교사의 수업 내용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거나, 수업 도중, 혹은 근무 시간에 불쑥, 사전 약속 없이 찾아가거나 전화를 하는 등의 행동으로 인해 교사가 심각하게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교사는 학군에 속해있는 변호사에게 법적인 문제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도움 받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내 경우도 주로 전화보다는 이메일이나 문자로 선생님들과 대화를 하고 의견을 나눠왔었다.

학생이나 학부모의 교사 폭행에 대해서도 엄중하고 단호하다.

학교마다 관할 경찰들이 상주하거나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즉시 출동하고, 싸움이나 폭력을 일으킨 학생에게 그 자리에서 벌금 청구서를 떼서 벌금을 물게 하거나 학교 내 격리 시설, 혹은 소년원에 보내기도 한다.

스쿨버스 내에서 학생이 문제를 일으켰다면, 바로 버스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그 학생을 태우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있으면 교사는 즉시 학교장이나 교감에게 전화를 하고, 당사자인 학생은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3~4일이나 가끔은 일주일까지 친구들과 떨어져서 격리 시설에 있어야 한다.

격리 시설에는 보조 선생님이나 도우미가 있고, 격리 시설에 갇힌 아이는 그 기간 동안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활동을 같이 하지 못하고 교사만 들어가서 숙제나 학습을 시킨다.

이 부분에 대해 만약 학부모의 항의가 있다면, 학교에서는 그 즉시 학부모에게 아이를 집에 데려가 훈육할 것을 요구하며 정학 조치를 내린다.

한마디로, "학교가 아이를 제대로 훈육하게 해 주세요, 아니면 부모님이 데려가서 직접 훈육하세요." 이런 차원인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공교육을 아예 없애고 홈스쿨링이나 사교육으로만 아이들을 가르칠 게 아니라면, 학교와 교사를 지지하고 존중해야 한다.

학부모가 교사를 지지하지 않게 되면 학생들도 바로 이것을 눈치채게 된다.

"선생님, 어차피 나한테 아무것도 못할 거잖아요?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학부모가 교사의 험담을 하거나 욕을 하게 되면, 교사는 그것이 존경심이든 인권이든 모든 걸 잃게 되는 것이다.

학부모가 교사를 먼저 존중해야 학생들도 선생님을 따를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거 아닐까.

학생 인권, 학부모의 권리... 당연히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교사의 인권은 누가 지켜줄 수 있는가?

현실적이고 신속한 대책 마련과 제도 보완이 시급해 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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