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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Mar 04. 2024

도우미 아빠

가족 노래방

"아자! 가자! 우리 민영이 다음 곡은 BTS 노래네? 어서어서 앞으로 나와주세요~~~!"

현란한 노래방 미러볼의 조명이 방안을 가득 수놓은 토요일 저녁.

고등학생 딸내미 둘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파이팅 넘치게 소리소리 질러가며 흥을 돋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집안의 가장인 남편이다.


워낙에 가족 중심으로 똘똘 뭉쳐 다니는 우리는, 나도 남편도 주말엔 가급적 가족 외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만들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된 지 오래이고, 웬만한 주변 사람들도 이젠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이다.

토요일 저녁의 변함없는 루틴대로, 일찌감치 고깃집에 들러 양념갈비에 삼겹살로 배를 채운 우리 가족은,

소화도 시키고 가족 간의 단합을 더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해 늘 2차로 노래방을 찾는다.

처음 우리 가족이 노래방을 찾았을 때, 늘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술손님들의 방문에만 익숙하던 노래방 직원의 신기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요즘 들어 부쩍 노래방에 재미를 붙인 두 딸내미들은 좀처럼 마이크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

두 녀석이 경쟁적으로 선곡을 하며 일주일 동안 벼루어 오던 노래들을 쉴 새 없이 불러 젖힌다.

덕분에 남편과 나는 어느 순간부터 노래방 구석으로 밀려나게 됐으며, 두 시간 동안 각자 노래 한곡씩을 불러볼까 말까 한 지경이 되었다.

녀석들은 음료수, 남편과 나는 병맥주를 앞에 놓고 고소한 버터향 가득한 팝콘을 집어 먹으며 토요일 저녁을 즐기고 있는 이 순간.

한국 가요를 부를 땐 다소 어색하고 어눌한 발음에 음정이나 박자가 제 멋대로일 때도 있지만, 세상 진지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는 녀석들의 모습은 우리 부부를 흐뭇하게 한다.

딸내미들이 원하는 노래를 찾아서 예약해 주고, 다소 육중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으로 막춤까지 춰가며 분위기를 띄우는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의 모습은 나와 딸내미들을 행복하게 한다.


큰 녀석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때로는 부르스 타임도 가지면서, 아빠의 사랑과 정을 온몸으로 나눠주고 있는 남편을 보며 생각한다.

'세상에 저런 아빠가 또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그 어떤 비싼 물건보다 더 귀하고 값진 '아빠의 사랑'이라는 선물을 받으면서 자라고 있구나. 이 복 많은 녀석들 같으니라고.'

토요일 밤을 불사르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열과 성을 다해 노래방에서 딸들의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멋지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남편의 보조 도우미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손목이 떨어져 나가도록 열심히 탬버린을 흔들며 딸들의 흥을 돋워 보는 토요일 밤이다.

행복이 뭐 별 건가 싶다.

그냥 이런 게 행복이고 사랑이 아닐까. 알고 보면 그리 멀리 있지 않고 어렵지 않은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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