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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Jul 19. 2024

74 호랑이들의 한양 도성 뜀박질

한양도성길 스탬프 투어

'아오~어제 너무 달린다 했다. 뛰기도 전에 벌써 몸이 이렇게 무거우면 어쩐다냐...'


문경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통해 알게 된 '마라톤 밴드', 일명 '마밴'

그리고 그 마밴 소속의 74년생 호랑이띠들의 소모임인 '74 범띠 마라톤 으르렁 으르RUN'.

그 74 동갑내기 친구들과 금요일밤 강남역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까지는 좋았으나,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7시에 그 친구들과 남산에 모여 한양 도성 둘레길을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뒤로한 채, 너무 기분 좋게 음주를 한 탓에 제법 묵직한 숙취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그룹런은 어찌 보면 순전히 나를 위해 약속된 것이기에, 달리다 쓰러질지언정 무조건 가야 하는 자리였다.

너무나 달리고 싶은 코스였으나, 혼자서는 백 프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중도포기할 확률이 높았기에 혼자 고민 중이었는데, 고맙게도 친구들이 흔쾌히 동참해 주겠다고 제안해서 만들어진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택시를 타고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니, 마밴에서 토요일마다 남산을 달리는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문경에서 얼굴을 뵌 분들과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초면인 분들과는 통성명을 하며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7명의 74 호랑이 친구들이 모였고, 이미 몇 차례 완주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각자 코스 분석을 하며 이 길이 맞네, 저 길이 빠르네 의견을 나누면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아침 8시도 되기 전인데 벌써부터 후덥지근해지는 날씨가 심상치가 않은 가운데, 7마리의 호랑이들이 남산을 출발했다.

'뭐 얼마나 달렸다고 벌써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 거야. 몸은 천근만근이고, 아 이거 힘든 일정이 되겠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발했지만, 속도 불편하고 몸도 무거운 데다가 날씨마저 덥고 습해지니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코스 후반으로 갈수록, 컨디션이 살아나고 몸이 더 가벼워짐을 느꼈다. 워낙 많은 땀을 흘리다 보니 오히려 알코올 기운이 몸 밖으로 배출돼서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멀쩡하게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인증서와 배지를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인증샷을 찍어야 하는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고, 중간중간 실없고 썰렁한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은 채, 소풍 나온 학생들 마냥 신이 난 7명의 74 호랑이들.

오늘의 그룹런을 위해 인제에서 차를 몰고 올라온 친구도 있었고, 아직 긴 거리를 달려보지 않은 초보 러너인 친구도 있었으며,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오르막 구간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힘들어하던 친구도 있었지만,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고, 서로 배려하고 도와가며 차근차근 코스를 따라 움직인 덕분에, 덥고 힘든 날씨에도 웃으면서 여유 있는 한양 도성길 투어를 마칠 수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이들은 내 학교 동창들도 아니고 이웃도 아니며, 제대로 얼굴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들일 뿐인데...

단지 마라톤이라는, 달리기라는 순수한 취미 하나로 만난 이들이 이토록 정이 깊고 훈훈할 수가 있는지...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 결코 만만치 않았던 코스였지만,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는 걸 우리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오늘의 투어.


꾀죄죄하고 땀범벅이 된 몸을 간단히 닦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대한민국 종단 537km라는 무박 6일의 무시무시한 대장정을 무사히 완주한 또 다른 74 호랑이 친구를 축하하는 자리와 한양도성 투어 뒤풀이를 겸한 모임까지 가진 후 아쉬운 작별을 하고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어쩐 일인지 가볍다. 분명히 힘든 하루였을텐데, 전혀 피곤하지 않고 뭔가 흐뭇하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특히나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갑자기 나의 인맥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확 넓어지고 다양해져서 큰 선물 꾸러미를 받은 기분마저 드는 요즘이다. 원래 그다지 사교적이거나 외향적이지 못한 탓에,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나인데... 나이 오십 넘어서 이렇게 많은 친구들을 갖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기회만 된다면, 봄과 가을 그리고 겨울에도 한양 도성길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그만큼 아름답고 멋졌던 코스, 그보다 더 훌륭했던 사람들...

인증서와 배지를 자랑스럽게 만지작거리며, 한국에서 만든 아름답고 소중한 또 하나의 추억을 나만의 앨범에 살포시 꽂아두는 밤이다.

74 호랑이 친구들아,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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