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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Nov 12. 2021

거북 맘의 대학 생활

일상 이야기

"교수님, 자 이제 천재 시인의 시를 보여 주세요! 암호 말고요!"



팔팔하고 어린 원어민 젊은이들과 함께 교육학을 전공하던 나는

늦어도 너무 늦은 늙다리 아줌마 대학생이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되겠냐는 같은 그룹의 예쁘장한 남학생에게 흔쾌히 나이를 알려줬더니

자기 엄마랑 같은 나이란다, 젠장...


다른 학과보다 교육학은 수강해야 할 과목들도 많았고

그렇다 보니 이수해야 할 학점도 높았다.


작년에 졸업했어야 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천신만고 끝에 올해 5월에 드디어 졸업식을 하긴 했다.

그동안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얼마나 눈물 콧물 빼가며 공부했는데...

졸업식 안 해주면 학교 정문 앞에 드러누울까 생각도 했었다.



뒤돌아 보면, 힘들지 않고 어렵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을 만큼

나에겐 모두 높고 큰 벽처럼 느껴지던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중에 영문학, Literature 과목은 나에게 참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었다.

한국에서 소싯적에 공부할 때는

그래도 나름, 문학 과목을 좀 한다고 했었건만...

시, 소설, 드라마 등 유형별 영문학 작품들에 대해

분석하고 토론하고 리포트 쓰고...

당최 이런 일들 자체가 나이 마흔이 넘은 토종 한국 아줌마에게 쉬운 일이었겠는가 말이다.


고등학생이 된 우리 거북이들의 학과목들을 옆에서 지도하고 도와주다 보니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영문학 작품 분석에 대한

선행 학습이나 사전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런 워밍업도 없이 이런 수업을 들으며 쫓아가야 하는 일은

내게 결코 쉬울 리가 없었다.



뭐여, 나 지금 암호 해독해야 하는 건가?


우리 깐깐하신 영문학 교수님은 이 시를 쓴 시인에 대해 완전 천재라고 극찬을 했다.

Edward Estlin (E.E.) Cummings라는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란다.


저 난해하고도 기이한, 문자인지 암호인지 모를 것이 무려 '시'라고 한다.

저 시 하나를 가지고 우리는 한 시간 동안 분석을 하고 토론을 했다.


어쨌든 나는 드디어 저 암호를 해독했다.


우선, 괄호 안의 문자와 밖의 문자를 따로 읽어야 한다.

괄호 안의 문자들만 조합해 보면, 'a leaf falls'가 된다.

그다음, 괄호 밖의 문자들을 조합해서 읽어 보면, 'loneliness'가 된다.


(a leaf  falls) loneliness

이 시의 전체 내용이다.


교수님의 열성적인 설명에 의하면

마침표도 쉼표도 느낌표도 하나 없는 저 단순한 단어의 배열은 작가가 천재적인 발상이며

이 효과적인 배열 하나로 시의 이미지와 함축적인 내용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저 시의 구조를(짧은 단어들의 세로 배열과 구조) 잘 살펴보면,

나뭇잎 하나가 외로이 떨어지는 이미지가 연상됨과 함께

진정한 외로움과 고독을 느낄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른 미사여구 하나 없이 그저 단어의 배열과 구조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서

낙엽의 외로움과 고독을 표현한 시인의 천재성...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셨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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