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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거북 맘 Nov 24. 2021

냥이와의 동거

반려묘 이야기

'결벽증'이 있다.

아주 심한, 병적인 수준은 아닌 듯한데

굳이 단계를 구분하자면, 상. 중. 하 에서 중간 레벨쯤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청소에 대한 '강박증'이 있다.

그렇다고 매일 락스 청소를 하고 살균 소독을 해대는 수준은 아니지만 하루라도 '청소'를 건너뛴다는 건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털이나 머리카락에 대한 '집착'이 있다.

물론 종이조각 하나라도 바닥에 굴러 다니는 걸 용납하진 않지만

특히 머리카락이 거실이나 욕실 바닥, 침대 시트나 베개 커버 위에

널브러져 있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머리카락이 득실거리는(?) 침대에 누워있으면

마치 그것들이 꿈틀대며 내 몸을 기어오를 것만 같다.

버스에서 앞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의 목덜미나 옷깃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떼어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은 적도 있다.

써 놓고 보니 병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오른손엔 무선 핸디 청소기, 왼 손엔 끈끈이 돌돌이를 들고

이 방 저 방 다니며 양손으로 전투적인 '모닝 청소'를 하는 것이다.

물론, 오후쯤에 물 걸레질까지 하며 좀 더 꼼꼼한 청소를 한번 더 하지만

아침 청소도 건너뛸 수는 없다.


어쩌다 아침 청소를 하지 않고 외출을 하기라도 하면

밖에서 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신경이 쓰인다.

몸살이 나서 아파 누워있을 때도

어느 정도 청소가 돼있고 정리 정돈이 된 상태여야

비로소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것이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고

전생에 틀림없이 '청소부'였을 거라고 한다.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가 냥이 두 마리의 집사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털갈이 시기인지

요즘 들어 부쩍 털을 아낌없이 뿜어 주시는 두 냥이들.

그래서 요새는 하루 종일,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청소기를 돌리고 끈끈이 롤러를 굴리고 다닌다.


녀석들은 집안 곳곳 어디에나 흔적을 남기고 다닌다.

식탁 위에도 아이들 책상 위에도 심지어 싱크대 위에도

앙증맞은 발자국 도장을 찍고  

보송보송한 털들을 표식처럼 남기고 간다.


이불이나 침대 시트, 옷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온 집안이 자기 영역이라고 여기는 두 냥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게다가 내가 침대에 누워있기라도 하면 잽싸게 달려와

겨드랑이를 파고들고 배 위에 올라앉는 녀석들 덕분에

내 옷은 털 코트나 캐시미어 스웨터 마냥 늘 보송하다.


어디 털 뿐인가.

두 녀석이 하루 종일 어찌나 모래 화장실을 들락거리는지...

수시로 화장실 주변을 쓸고 배설물을 처리하고 모래를 갈아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이 된다.

종종 녀석들의 발바닥에 묻은 모래 알갱이들이 같이 따라와

침대나 베개 위에 선물처럼 알알이 놓여있기도 한다.


신나는 일이 있거나 흥분했을 때

또는 만족스럽게 단잠을 자고 일어나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후에

열정이 가득 찬 발톱으로 스크래치 하는 건 또 어떤가.

물론, 녀석들을 위한 캣타워와 스크래쳐가 따로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긁는 맛이 있는 건 역시나 가죽이라는 듯

소파나 의자를 아주 야무지게 박박 긁어댄다.




상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면 기꺼이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


서로 뜨겁게 사랑해서 만난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도

상대방을 위해, 내 익숙하고 오래된 습관이나

항상 고집해 오던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고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종종 그런 트러블 때문에 싸우고 헤어지기도 하는 걸 보면

꽤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어려운걸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수 천 수 만 가지의 표정과 사연들을 담고 있는 듯한 녀석들의 눈망울과

새침하게 살포시 모은 솜방망이 같은 앙증스러운  발.

밀당의 고수답게 집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애교와 카리스마.

도도하고 우아하게 살랑거리는 꼬리와 작고 오목조목한 얼굴.

그리고 모든 시름을 잊게 해주는 보드라운 털과 따스한 온기...


냥이와 함께 해야 하는 이유는 이외에도

수 십 가지는 더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내겐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 두 냥이 자매, 체리와 베리.

나의 오래된 결벽증과 다소 특이한 강박도 녀석들 앞에서는 무장해제되는 듯하다.

마치 녀석들이 뿜어대는 무수한 털들은

다른 식구들의 머리카락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듯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즐겁게 청소를 하는 내 모습에

남편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만큼 냥이와의 동거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내 모든 걸 바꾸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힘은 그토록 위대하고 대단하다.

녀석들의 털 관리를 위한 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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