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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Dec 16. 2021

'보헤미안 랩소디'와 남편의 눈물

영화 /음악 이야기

"로렌 아빠, 지금 우는 거야? 왜? 왜 우는데?"


멋쩍은 듯 웃어 보이긴 했지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건 분명, 남편의 눈물이었다.


2018년 겨울은 남편과 나에게 참 힘든 시기였다.


그 해 여름부터, 남편이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던 회사에서

남편을 다른 지역으로 발령내기 위한 비자 발급을 추진하고 있었다.

역대 전임 관리자들이 모두 거쳐간 과정이었기에

회사 측이나 남편, 심지어 비자 발급을 추진하는 미국 엘에이의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일이 틀어지거나 잘못될 가능성을 걱정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진행이 자꾸만 지연되고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이미 벼룩시장과 가라지 세일 등을 통해

살림살이 처분은 물론 차까지 팔고

여행 가방 몇 개만 남긴 채 떠날 준비를 거의 마친 상황이었던 10월 25일에는

기상 관측 이래, 미국 영토에서 가장 센 슈퍼 태풍이었다는 '유투'까지 덮치는 악재를 맞았다.


사이판과 그 주변 섬 일대를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린 무시무시한 슈퍼 태풍의 위력에

'전쟁이 나면 이런 꼴이겠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미국은 물론 한국의 공중파 뉴스에 까지 사이판의 참상이 보도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남편과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사이판 전역을 초토화시켰던 슈퍼 태풍 유투


'그래도 이 고비만 지나면 기다리던 소식이 오겠지.'

힘들고 심란한 와중에도 꾸역꾸역 긍정적인 생각을 머릿속에 밀어 넣고 있던 우리 가족에게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선물인 듯 찾아온 소식은

결국 남편의 비자 최종 승인이 거부되었다는 날벼락같은 결과였다.


게다가 복잡한 비자 재신청 조건상, 일단 사이판에서 한국으로 출국한 후에

한국에서 다시 신규 비자를 받고  사이판에 들어와야만 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이기까지 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생각지도 못하게 엄동설한의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잔인하고 어처구니없는 결과지만

차라리 그런 식으로라도 끝이 난 후에는 남편과 나 사이에 더 이상의 갈등은 없었다.

하지만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의 수개월 동안

피가 마르고 속이 타는 심정에

남편에게 원망 섞인 눈빛으로 이렇게는 더 못 살겠다고 일방적으로 퍼붓기도 많이 했었다.  


아직도 가끔 남편은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때 그 어떤 것 보다

당신이 힘들어하고 못 견뎌하는 모습 때문에 괴로웠었다고...


아무것도 준비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까지 데리고

쫓겨나듯 허둥지둥 사이판을 떠나

한 겨울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우리 가족은

서울에 임시로 머물 곳을 정하고 난 후에야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제야 겨우 제정신을 차린 두 부부가 단둘이 데이트 삼아 나온 1월의 어느 날 밤

2018년 10월 말경에 개봉해서 관객수 천만에 가까운 흥행성적을 거두며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심야 영화를 상영하던 강남의 어느 극장에서 종영 직전에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저씨 부대의 떼창'과 '싱어롱 상영관'이라는 열광적이고 유래 없는 현상까지 있었다는 건

뉴스와 기사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영화 종영을 앞둔 탓에 관람객이 우리 커플 외에 두 팀 밖에 없었던

호젓하고 조용한 심야의 극장에서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눈물을 보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왜 울지? 도대체 영화의 어느 포인트에서 울어야 했던 거지?'


이런 나의 생각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옷소매로 눈가에 남은 촉촉한 물기를 닦으며 남편이 얘기한다.

"에휴~ 당신이 어찌 알겠수. 애들은 모른다니까. 이걸 보고 울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누."


나보다 고작 네 살 더 많은 남편이 할 소리인가 싶긴 했지만

어쨌든 그날 밤 남편의 눈물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난,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무조건 여자로 태어날 거야."

"여자는 얼마나 편해. 그냥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조르기만 하면 되잖아."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는 아니지만

책임감 강하고 듬직하며 속 깊은 정이 많은 70년생 개띠 남편

고집 센 74년생 범띠 마누라와 연년생 두 거북이 딸들에 암고양이 두 마리까지

온통 girl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갑자기 잘 되던 컴퓨터가 말을 안 듣거나

하다못해 자동차에 경고등만 들어와도

크건 작건 간에 무슨 문제만 생겼다 하면 일단

아이들도 나도 제일 먼저 남편을 찾으며 매달리게 되는 건

남편이 우리 집안의 유일한 남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어떤 해결사보다 일사천리로 문제를 척척 풀어나가

구차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미리 앞서 사전 준비까지 해놓는 남편은

우리 가족에게는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은

다음 생애에는 여자로 태어나겠다며 너스레를 떨곤 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줄곧 홀로 해외에 살면서

혼자 힘으로 공부하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생활을 꾸리며 살아왔던 남편은

독립심과 생활력, 타고난 성실함으로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잠을 자면서

안 해 본 일이 없을 만큼 다양한 일들과 어려운 공부를 병행해 가며

그야말로 치열한 20대를 보냈다고 한다.


남편의 30대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장소인 사이판에서 시작됐고

사이판 생활 5년 차가 될 무렵인 서른 다섯 나이에

한국에서 사이판으로 갓 파견 근무를 나온 나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18년째 결혼 생활 중이며

결혼 생활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우리 곁에 왔다가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때로는 슈퍼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모든 걸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자리 잡은 주름과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흰머리를 바라보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의 무엇이

나이 50이 넘은 중년의 가장을 울게 만든 것일까.


남편이 물론, 엄청난 팝 음악 애호가이고 퀸의 팬이긴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으리라.

이 영화로 인해 떼창을 하고 함께 눈물을 쏟았다는

다른 많은 4050 가장들의 그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불같은 열정과 젊음, 패기로 무대와 관객들을 장악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팝 스타인 프레디 머큐리

생애 마지막의 대규모 무대가 된 '웸블리 스타디움'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서

자신의 처절한 운명과 죽음을 예고하는 듯 절규 섞인 목소리로 열창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토해내고 온 몸을 불사르는 모습을 보면서

중년의 남성들이 유난히 눈물을 많이 쏟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눈물은 단순한 추억이나 감성에 젖어서 흘린 것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삶은 치열했고 공부해서 취직해야 했고

통과의례처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고 보니

어느새 나만 바라보고 있는 처자식들이 올망졸망.

점점 약해지고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애써 감추며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집안의 가장으로서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듯 살아가는 것이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이려니 하며 살아온 그들에게 

이 영화 한 편이 매개체가 되어

가슴속 깊은 곳 어딘가에 숨겨져서 잊고 살았던

청춘의 에너지와 지난날에 대한 회한들이 한꺼번에 밀려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남편의 눈물을 보기 전까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곡은 내게 그저 퀸의 수많은 명곡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Mama, just killed a man" "Mama~~ I don't wanna die~~"

이런 가사들로 채워진 프레디 머큐리의 독백하듯 처연하면서도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측은함과 짠한 마음이 가슴속을 쓰라리게 한다.


물론, 남편처럼 눈물을 흘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남편의 마음이 오롯이 내게 와닿는 걸 느낀다.


남편은 늘 강하고 자신만만한 듯

항상 밝고 쾌활하게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우리 앞에서 낙관하며 큰소리치지만

사실은 Mama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힘들고 두렵고 지쳐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는 요즘이다.


우리 70년생 개띠 서방님의 넓은 어깨와 등짝이 오늘따라 왜소해 보이는 건

몇 달 동안 유지해 온 간헐적 단식으로 인해

체중 감량에 성공한 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일 아침엔 출근하는 남편을 두 팔 벌려 크게 안아주고

애정을 가득 담아 궁둥이 팡팡도 해 줘야겠다.

보헤미안 랩소디에 흠뻑 젖은 중년의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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