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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Dec 20. 2021

집착 냥

반려묘 이야기

엄마, 나만 바라보라고!

새벽 3시.

방문을 여는 손길이 몇 차례 멈칫한다.

자다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는 발걸음이  한동안 방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녀석은 나의 기척을 벌써 느낀 듯 "냥~"하는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달려와 방문 앞에서 대기 중이다.

'짜식, 잠귀도 엄청 밝네.'

방문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서 대치중인 우리.

지금 이 시간에 우리 뭐 하는 거니.


두 냥이들의 집사가 된지도 어느덧 8개월이 넘어간다.

이제 우리 가족에게 냥 자매 '체리와 베리'

반려묘라기보다는 그냥 가족의 일원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사람마다 각자의 개성이 다르고

같은 부모 밑에서 나고자란 형제자매들이라도

각양각색의 특성이 있듯이

냥이들도 각자 참 다양한 성격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 냥 자매, 체리와 베리도 각자 개성이 참 뚜렷한데

특히, 업둥 냥 베리 녀석은 유난히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이건 뭐, 애교가 많거나 살갑게 구는 냥이를 칭하는 표현인

'무릎 냥' '개냥이'등의 표현만으로는 녀석의 병적인 집착이 설명이 안된다.

이 녀석은 좀 심각한 증상을 보인다.


녀석은 일단, 내 얼굴만 보였다 하면 보채고 칭얼대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사람의 아기가 내는 소리와 너무 흡사해서

가끔은 남편도 깜짝 놀라곤 한다.

"냥~~? 맘~~? 잉잉~~"

이런 희한한 소리를 계속 내면서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징징 거리는 녀석을 보고 있자면

나중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아니, 베리야! 왜애애애애~~~! 엄마 보고 어쩌라고!"

결국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앉아

목이 빠지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녀석의 머리를 쓰담 쓰담해주고

턱밑을 부드럽게 간질간질해주고 나서야

녀석의 칭얼거림이 조금 수그러든다.


그뿐인가.

내가 컴 앞에서 작업이라도 할라치면

잽싸게 책상 위로 올라와 노트북 앞에서 계속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고 앉아 있거나

아니면 아예 내 허벅지 위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녀석의 체온 때문에 점점 뜨끈해져 오는 허벅지가 나중엔 저려오기까지 하지만

평화롭게 새근새근 잠든, 세상 편안해 보이는 녀석의 모습 앞에서 나의 불편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의 집착의 끝은 어디일까


잠깐 쉬려고 침대에 드러누워 있을 때도 예외는 아니다.

나의 겨드랑이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지 오래되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겨드랑이 속으로 쏙 파고들어 오는 녀석은

한참 동 얼굴을 비비고 문질러 대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어

그 동그랗고 투명한 눈망울로 나를 그윽하게 바라본다.

녀석의 눈빛에는 확실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엄마가 참 좋아요, 계속 예뻐해 주고 나만 바라봐야 해요.'


유난히 나를 따르고 내게 집착하는 집착 냥, 베리.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있을 때조차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녀석.

내 발에 녀석의 얼굴을 무지막지하게 비벼대고

끊임없이 냥냥 거리며 쓰다듬어 줄 것을 계속 요구하는 녀석.


녀석 때문에, 새벽 화장실 볼일도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나오는 기척이 들리기만 하면 그 조용한 새벽에

요란스럽게 냥냥 거리며 쏜살같이 화장실로 따라 들어와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며 나의 관심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녀석의 나에 대한 집착의 끝은 어디일까.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녀석이 지금보다 더 자란 후엔 나아질까.

이렇게까지 나를 따르고 집착하는 냥이 녀석은 처음이다.

내가 원래 냥이들한테 좀 인기가 있고 먹히는 스타일인 건 알았지만.

그래서 심지어 길냥이들 조차도 내게는 경계심을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올 정도로 냥이와의 친화력을 자랑하는 나였지만.

이토록 병적으로 내게 집착하는 녀석은 처음 본다.

나는 녀석의 넘치는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복에 겨운 행복한 집사인가

아니면, 자유를 빼앗기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노예 집사인가.


뭐 아무려면 어떤가.

당분간 녀석의 나에 대한 집착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듯 하니 말이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녀석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 그나저나 지금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어쩐다.


내 품에 있을때 가장 편안해 보이는 집착 냥,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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