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운영위원장이 뭐라고!

수련관은 학교와 자유학기제를 연계해 청소년 체험활동을 운영했다. 매주 화요일, 1 교실을 맡아 수업을 진행하던 중, 유독 눈에 띄는 청소년이 있었다. 그는 활달하고 누구에게나 다정하게 다가갈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나는 그 청소년에게 수련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고, 그는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 그의 열린 성격 덕분에 라포 형성도 금세 이루어졌고, 당시 그는 예비청소년운영위원회에서 리더 역할을 맡아 성실히 활동했다.


그해 12월, 대정청소년수련관 청소년운영위원회는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하게 됐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이던 그에게 함께 수상식에 가자고 제안했다. 그런 공식적인 자리가 청소년 활동에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는 그날 이후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며 다짐했다. 졸업 후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바쁜 학사 일정 속에서 청소년운영위원회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나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당연히 청소년운영위원장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3월 초, 청소년운영위원회 오리엔테이션에서 조직의 구조와 활동 방향을 익힌 뒤, 운영위원장과 간부 선출 투표가 이어졌다. 후보자들은 각자 자신의 강점과 앞으로의 계획을 당당하게 발표했고, 그 열기는 마치 총선이라도 치르는 듯 긴장감이 감돌았다.


개표는 전직 운영위원장이 맡았다. 칠판에 하나씩 ‘바를 정(正)’ 자로 표시할 때마다 후보들의 가슴은 쿵쾅거렸다.


그런데 낙선한 그는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나는 여러 번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지만, 끝내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참으로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청소년운영위원장이 뭐라고, 그토록 큰 상처를 받다니…. 그 청소년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해 내내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는 자신이 준비도 잘했고, 실력도 충분하다고 믿었기에 당선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또 선생님들이 자신을 지지해 주기를 내심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단지 공정한 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뒤에서 돕는 조력자일 뿐이었다.


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활동해 온 청소년이었으니까.


게다가 그의 부모님은 그가 수련관 활동보다는 공부에 전념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그 자신도 진로를 위해 활동을 멈출 수 있었겠지만, 그는 끝까지 참여했다. 그런 그였기에 더 안타까웠다.


그의 꿈은 경찰대학에 진학해 경찰관이 되는 것이었다.

그때의 그는 지금도 내 마음 한편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

가끔 문득 그 아이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리고 늘 마음속으로 소망한다.

“너의 꿈이, 반짝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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