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빛나는 리더, 채은

누군가의 존재만으로도 든든함을 느낄 때가 있다.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

내게 채은이는 바로 그런 청소년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동아리 오리엔테이션이 열리던 날이었다.

3월 초, 10개의 동아리가 참여한 오리엔테이션 현장은 청소년들의 웃음과 이야기로 북적였다.

각 교실은 왁자지껄했지만, 지도사들은 혼이 빠질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며 질서를 잡고, 동아리별 첫 회의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그 첫 회의는 청소년들이 한 해 동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출반선이었다. 임원진 선출이 끝난 뒤, 동아리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첫 공동 회의를 진행했다. 그때, 선배들 사이에서도 주저 없이 손을 들고 자신 있게 의견을 발표하던 한 청소년이 눈에 띄었다.


그 반짝이는 눈빛, 당당한 태도. 그녀가 바로 채은이었다.


채은이는 말보다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조용한 리더’였다. 맡은 일은 척척 해냈고,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이끄는 능력이 있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녀는 공예 동아리의 리더로, 회의록 작성도 꼼꼼히 해내고, 회원들과의 소통도 능숙했다.


3학년이 되자 예비 청소년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다른 위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위원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던 것도 그녀였다.


졸업을 앞두고 채은이는 바이오마이스터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부모님은 그녀의 결정을 존중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이유로 일반고 진학을 권했다.


나는 종종 그녀를 ‘천재 소녀, 채은’이라고 불렀다.


채은이는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컴퓨터 학원에서는 또래 학생들을 가르쳤고, 학교 선생님들조차 방학이나 학기 중 그녀의 도움을 요청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채은이는 시험 기간에도 공부에 몰두하지 않았다. 대신 책을 읽거나, 동아리와 위원회 같은 공적인 활동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성적은 항상 최상위였다.


하루는 내가 물었다.

“채은아, 공부 안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항상 1등이야?”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집중력이 좋은 편이에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은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금 독서의 힘을 실감했다. 어릴 적 독서는 IQ와 EQ에 깊은 영향을 준다는 걸 새삼 느꼈다.


채은이 덕분에 그 해 청소년운영위원회 모집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타지에 있는 바이오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원서 접수부터 시험, 입학식까지 부모의 도움 없이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낸 그녀의 모습은 대견하고 의젓했다.


그녀의 책임감과 헌신이 참으로 고마웠다.


나는 멀리 진학했으니 활동을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채은이는 끝까지 함께했다. 입학 당시 받은 장학금으로 제주에 자주 내려왔고, 오리엔테이션, 워크숍, 회의 때마다 참석해 위원들과 소통하며 활동을 이끌었다. 회의에 빠진 친구들에게 연락해 참석을 독려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지금 채은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입사해 사회 초년생으로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무엇이든 믿고 맡길 수 있었던 청소년, 채은.

앞으로도 그녀의 미래가 환하게 빛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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