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향기에 머물다

한라꽃향유

가을은 향유의 계절이다. 초가을날, 좀향유가 나지막한 빛으로 한라산 대지를 적신다. 오름마다 잔물결처럼 번지는 그 빛이 마루금을 타고 흐르면, 한라꽃향유가 어느새 깊이 가을을 불러온다.


한라꽃향유가 흐드러진 오름은 가을향기와 쓸쓸함이 어우러진다. 가을향기란 어떤 내음일까. 곰삭은 어머니의 손맛 같은 향기, 저녁밥 짓는 냄새처럼 정겹고, 반겨주는 이 없어도 고향이 그리워지는 그런 향기일까. 아니며 텅 빈 가슴을 스치는 바람처럼, 상념 한올이 스며드는 쓸쓸함일까.


이 가을이 지나기 전에 그 향기를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자그마한 꽃송이들이 이삭처럼 모여 보랏빛 물결을 이루는 한라꽃향유. 때론 붉은 자줏빛으로 번지며, 늦가을의 바람 속에서 고요한 파동을 만든다.

좀향유 (5).JPG 좀향유

작은 선점에서 향을 내뿜기에 ‘향유’라 불리며, 꽃말은 ‘가을 향기’다. 향유 식구도 다양하다. 꽃향유, 한라꽃향유, 좀향유 등이 있다. 한라꽃향유는 줄기와 잎 뒷면에 하얀 긴 솜털이 덮여있다. 마치 얇은 밍크코트를 두른 듯 우아하다. 좀향유는 고산지대 바람을 견디며 앉은뱅이꽃으로 피어난다. 꽃명을 정확히 알지 못해도 괜찮다. 가을날 마음을 달래주고 세파에 닳은 하루에 작은 빛을 건네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한라꽃향유7.jpg 한라꽃향유

보랏빛 향유가 출렁이는 오름에서, 나는 늦가을의 향기를 깊이 들이킨다. 짙은 보랏빛이 바람 속에 흔들릴 때, 가을의 향기 또한 내 안으로 고요히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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