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에 스며든 작은 전율

자주땅귀개

안개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은 날도,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날도, 바람이 속삭이는 날도, 눈발이 흩날리는 날도, 그 어느 때를 찾아가도 좋은 1100 고지습지.


자연의 숨결이 낮게 고이는 이곳은 철마다 다양한 들꽃이 피어난다. 그곳에서는 황폐한 바람조차 한 편의 詩처럼 은은한 전율로 흐른다. 그 미세한 떨림 속에서 생명의 움직임이 고요히 스며든다.


습지의 풀숲을 들추듯 눈길을 낮추면, 아주 작은 꽃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자주땅귀개. 그 앙증맞은 꽃이 식충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이 품은 비밀에 놀랍게 된다.


아이에게 이 꽃을 보여준 날. 아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예쁜 꽃이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꽃이 아니라, 실처럼 가는 뿌리 끝에 작은 주머니로 벌레를 빨아들이지"라고 말하자

아이는 "꽃뱀 같아, 무서운데 예뻐"라고 말해 웃음을 주었다.


평온한 이곳에도 자연의 법칙은 엄연히 살아있다. 예전에 거머리가 올챙이를 물고 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그러나 먹이사슬이 이어지는 한, 동식물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습지는 천연스럽다. 겉으로는 고요한 수면처럼 잔잔하지만, 그 아래에는 수많은 생명의 규칙이 얽히고설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저, 이 전율의 자리를 조용히 지나가며 배우면 된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생명들이 모여, 이 고요한 습지를 오늘도 빛나게 한다는 것을.




월, 수, 금 연재